여행에 숨은 역사

오래된 이야기와 그 시절 추억을 좇다
대구광역시

오래된 이야기와 그 시절 추억을 좇다<BR />대구광역시

글·사진 김초록 여행칼럼니스트


오래된 이야기와 그 시절 추억을 좇다
대구광역시


어느 도시든 그곳만의 특색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큰 도시, 대구의 진면목은 저 아스라한 역사에 있다. 골목마다 숨은 유서 깊은 이야기와 전통은 우리가 미처 알지도, 보지도 못했던 것들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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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보고 코로 맡는 한의약 역사

‘한의약의 역사’로 자리매김한 대구약령시, 약령시장(藥令市場)은 350년(효종 9년 개설) 전통을 자랑한다. 이른바 ‘약전골목’으로 불리는 이곳은 경매를 통해 한약재 값이 매겨지는 전국 유일의 한약재 도매시장으로, 현재 한약방·한의원·약업사(한약도매상)·인삼전문점·탕제원 따위의 한방 관련 업소 350여 개가 빼곡히 늘어서 있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탕제원에서 풍기는 한약 달이는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온다.

매년 5월에 열리는 약령시한방문화축제는 약령시의 자랑거리다. 1978년 제1회 달구벌 축제 행사의 일환으로 개최되었던 개장행사를 현대적으로 승화시킨 전통 한의약 축제다. ‘즐거운 힐링 한방랜드 약령시로 놀러 오이소!’라는 슬로건으로 열리는 축제는 볼거리, 체험거리가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매월 1,6일에 열리는 한약재도매시장엔 당귀·구절초·산수유·천궁 등 전국 각지에서 온 국산 한약재 1백여 종이 경매에 나온다. 대부분 자연산 약초들로 중간 상인들이 시골장터나 산지에서 모아 갖고 온다. 가격은 시중보다 20~30% 저렴한 편이다.

이밖에도 약령시장 한편에 있는 대구약령시한의약박물관에서는 1910년대 약전골목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희귀약재뿐 아니라, 옛 한방 의료기구 및 한방 관련 고서적 등 한의학 문화를 두루 살펴볼 수 있다.

대구약령시: 대구시 중구 남성로 51-1 / 053-257-0545

대구약령시한의약박물관:대구시 중구 달구벌대로 415길 49 / 053-253-4729 / dgom.daeg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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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약령시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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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령시한방문화축제 모습(약령시한의약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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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령시한의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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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간직한 골목에서

약령시 옆 서성로 일대는 이른바 ‘진골목’으로 불린다. ‘역사가 긴 골목’이라는 뜻이다. 근대 초기 달성서씨 부자들을 비롯해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업가·정치인·문인 등 당시 대구의 명망가들이 많이 살던 동네였다고 한다. 촘촘히 이어진 길에는 고풍스런 한옥이 있는가 하면 빛을 받아 번쩍이는 건물들이 줄지어 있어 과거와 현대가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다. 특히 현존하는 대구 최고(最古)의 양옥 건물 정소아과의원, 1982년 개업해 지금도 영업 중인 미도다방 등은 근대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진골목 한쪽에는 대구경북 최초의 개신교 교회인 대구제일교회가 있다. 1893년 설립돼 오늘에 이르고 있는 이곳은 뾰족하게 솟은 두 개의 첨탑과 회색 화강암 외벽이 인상적이다. 푸른 담쟁이로 덮인 붉은 예배당 벽은 마치 예술작품처럼 고풍스럽다. 이웃하고 있는 화교협회 건물에는 시황제·공자·당태종 등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1925년 서병국이 지은 저택의 일부였던 이곳은 80여 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도 균형미를 유지하고 있다.

진골목은 독립운동가 이상화와 서상돈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저항시로 우리에게 친숙한 이상화는 이곳에서 타계하기 전 4년 동안 지냈다. 고택에는 석류나무 한 그루와 우물이 당시 모습 그대로 지키고 있고, 검은색 중절모를 쓰고 뒷짐을 지고 선 그의 벽화가 눈길을 끈다. 이상화 고택 맞은편에는 서상돈 고택이 있다. 서상돈은 민족독립과 국권회복을 위해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남자는 금연을 하고 여자는 은비녀를 뽑아 일본에 국채를 갚자’며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되었다.

대구제일교회: 대구시 중구 국채보상로 102길 50 / 053-253-2615

이상화 고택·서상돈 고택: 대구시 중구 서성로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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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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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돈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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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계단 한 계단 독립 의지가 서린 곳
진골목은 90개의 계단이 차곡차곡 놓인 3·1만세운동길로 이어진다. 1919년 1천여 명의 학생들이 이곳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계단 꼭대기에 이르면 ‘푸른 담쟁이넝쿨이 무성한’ 청라언덕으로 이어진다. 일제강점기 미국 선교사들이 이곳에 사택을 지을 때마다 구해다 심은 청라(靑蘿)가 자라 건물을 감싸 오르게 되어 이름 붙었다고 전해진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나리 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가곡 ‘동무생각’에 등장하는 청라언덕이 바로 이곳이다. 이 곡을 작곡한 박태준은 1910년대 대구 계성학교에서 수학했는데, 학창시절 청라언덕에서 가까운 신명여자학교에 다니는 한 학생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 여학생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지은 곡이 ‘동무생각’이라던가. 박태준은 일제의 탄압에 맞선 작곡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평양 숭실전문학교 문학부에 다닐 무렵 3·1운동에 동참했다가 일경을 피해 대구까지 피신한 바 있으며, 활발한 음악활동을 했던 1945년에는 일본 헌병대에 체포돼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광복 후에는 한국오라토리오 합창단을 창단해 헨델의 ‘메시아’를 초연하는 등 우리나라 음악 발전은 물론 서양음악의 토대를 닦았다.
‘동무 생각’의 무대인 동산동, 나지막한 청라언덕에는 지은 지 100년이 넘는 3채의 선교사 사택과 그들의 묘비가 있는 은혜정원이 있다. 다시 3·1만세운동길 계단을 내려오면 프랑스인이 설계했다는 계산성당(사적 제290호)이 보인다. 경상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계산성당은 서울 명동성당, 전주 전동성당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성당으로 꼽힌다. 영남 최초의 고딕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결혼식을 올린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청라언덕: 대구시 중구 달성로 56
계산성당: 대구시 중구 서성로 10 / 053-254-2300 /
www.kyes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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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운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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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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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추억이 있는 거리

진골목에서 차량으로 약 10분 이내에 떨어져 있는 신천(新川)대로 둑방길은 김광석거리로 통한다. 방천시장까지 길이 300여 미터에 불과한 짧은 거리지만, 주말이면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대거 모여든다. 1980~90년대를 대표하는 김광석의 노래는 그가 떠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청춘과 그 시절의 추억을 안고 있는 세대들의 감성을 어루만지고 있다. 허름한 골목길 한편에는 통기타를 들고 환한 웃음을 짓는 그의 벽화가 잔잔한 그리움처럼 있다. 김광석 동상과 더불어 담벼락에 그려진 대형만화, 시인 정훈교의 시 ‘벽화에 세들어 사는 남자’ 등 시선을 이끄는 대로 발걸음이 닿는다. 운이 좋으면 작은 야외 공연장에서 음악회를 구경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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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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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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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마을

둔산동에는 경주최씨 집성촌인 옻골마을이 있다. 팔공산 자락이 부드럽게 감싸 안고 있는 아늑한 전통마을이다. 조선 1616년(광해군 8년) 대암공 최동집이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을 시작으로, 현재 14대 종손 최진돈(62세)씨까지 400년 가까이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학자수(學者樹) 또는 출세수(出世樹)로 불리는 수령 350년의 회화나무 두 그루가 올곧게 지키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정겨운 돌담길로 둘러진 경주최씨 백불고택(百弗古宅)은 一자형 사랑채와 ㄷ자형 안채로 이루어져 양반가옥의 전형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주택으로선 대구 관내에서 가장 오래됐다. 풍수지리설과 음양오행설에 따라 지은 건물로 기둥 하나에도 유교적 세계관이 녹아 있다. 대문채 옆에 자리 잡은 수구당(數咎堂)은 백불암(百弗庵) 최흥원이 제자를 가르쳤던 곳으로, 최흥원의 호(號)를 따서 이름 붙었다. 최동집과 최흥원의 별묘와 가묘 등이 모셔진 보본당(報本堂)은 백불고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다. 예부터 종가의 면모를 갖추려면 조상을 모시는 사당과 종택이 현존하며 종손·종부·지손·문중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백불고택은 모든 조건을 충족한다고 할 수 있다.

옻골마을에서 차량으로 약 20분 거리 떨어진 불로동 고분군도 가볼만한다. 넓은 땅위에 봉긋 솟은 200여 기의 고분(古墳)들은 초기 철기시대(서기 4-5세기)에 만들어진 것들로, 이 지역 토착 세력의 분묘로 알려져 있거니와 대구 분지의 옛 모습을 파악할 수 있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경주최씨 종택: 대구 동구 옻골로 195-5

불로동 고분군: 대구 불로동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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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최씨 백불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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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동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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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무엇보다 ‘골목’이 매력적인 곳이다. 어린 시절 동네 골목을 누비고 다녔듯이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이곳저곳 기웃거려 보자. 길목마다 마치 소중하게 간직한 보물처럼 오래된 이야기와 그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을 마주칠 수 있다.

          


         

김초록

여행칼럼니스트 겸 수필가. 현재 『월간 비타민』, 『건설경제신문』, 『서울우유』, 『냉동공조신문』에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다. 여행 저서로는 『여름 이야기』, 『7가지 테마가 있는 여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