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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호젓한 여행
삽시도 둘레길

나만의 호젓한 여행<BR />삽시도 둘레길

글·사진 임운석 여행작가


나만의 호젓한 여행

삽시도 둘레길



카페에서 즐기는 커피 한 잔, 친구들과의 수다, 경기장에서 목청껏 외치는 응원 등 사소한 것들이 고마운 것이었음을 우리는 그동안 깨닫지 못하였다. 사람들과 거리 두기가 일상화된 요즘, 언택트 여행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답답한 시공간을 벗어나 혼자 또는 둘이서 호젓한 섬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섬은 특별한 선물을 갖고 여행자를 기다릴 것이다. 서해의 외딴섬 삽시도에서 특별한 선물을 마음껏 만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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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바라본 삽시도



이맘때 그 섬에 가는 이유

충청남도 서해안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많다. 섬들은 빛이 좋은 날 보석처럼 반짝이다가 해 질 녘이면 황금빛으로 변해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중에서도 삽시도는 충남 서해안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 섬의 면적이 3.8㎢, 해안선은 11km다. 

삽시도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섬의 모양이 화살이 꽂힌 활(弓)의 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꽂을 ‘삽(揷)’, 화살 ‘시(矢)’를 써서 삽시도라 한다. 마한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전해지며, 예부터 멸치가 많이 잡혔다. 보령에서 해상으로 13km 떨어진 삽시도는 대천항에서 배로 40분 정도 가면 도착한다.

여름 성수기에는 관광객을 위한 민박이나 펜션, 식당 등을 운영하지만 주민 500여 명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주민들 가운데 선상 낚싯배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삽시도 인근은 이미 오래전부터 낚시 포인트로 잘 알려져 있다. 주로 우럭, 노래미 등이 많이 잡힌다. 바다를 친구 삼아 세월을 낚는 낚시도 좋지만 이맘때 삽시도를 찾아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다. 조붓한 숲길과 탁 트인 바다를 거닐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둘레길을 걷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기 때문이다. 삽시도는 산림이 울창한 데다 바다를 면하고 있어 섬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이 가득하다. 삽시도 둘레길은 ‘윗마을 선착장’을 출발해 요강수~보리망골~거멀너머해수욕장~오천초삽시분교장~진너머해수욕장~면삽지~붕긋댕이~물망터~황금곰솔 군락지~섬창~수루미해수욕장~딱뚝머리~밤섬선착장~밤섬해수욕장 등을 거친다. 길이는 5.6km, 완주는 3~4시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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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벽화가 그려진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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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진머리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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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밤섬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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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영 / 신흥무관학교 학생들과 백서농장 광경






내 마음에 화살이 날아왔다

배가 긴 한숨을 토해내듯 승객들을 선착장에 내려놓는다. 코로나19 탓에 섬을 찾은 사람은 손으로 꼽을 만큼 몇 되지 않는다. 소일 삼아 선착장에 나와서 일과를 보내는 마을 어르신들도 요즘은 발길이 뜸하다고 한다. 타인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접촉을 최소화하는 거리 두기가 일상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삽시도 둘레길은 선착장에서 시작한다. 선착장을 지나 마을로 접어들자 예쁜 벽화가 섬 여행을 더욱 설레게 한다. 마을은 고요하다. 아니 적막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여행자들의 발길이 예전만 못하니 섬에서 장사하는 주민들도 그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어부를 제외한 섬에서 펜션이나 장사를 하는 사람 대부분은 육지에 집을 두고 있으면서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은 아예 섬을 찾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호젓한 섬 여행의 참모습 즐기려면 요즘이 가장 좋은 시기일 수도 있으니까. 

마을을 벗어나 야트막한 언덕에 오르자 길게 이어진 진머리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눈부신 백사장에는 곱디고운 은모래가 반짝인다. 삽시도에는 진머리해수욕장 외에도 거멀너머해수욕장, 밤섬해수욕장이 질 좋은 백사장과 청정해역을 자랑하고 있는 터라 지난해 여름까지 피서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갯벌과 갯바위 틈에서 고동과 조개잡이가 가능해 가족 여행지로 인기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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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괴석이 즐비한 면삽지



숲, 길, 바람을 오르내리다
면삽지로 향하는 솔숲에서는 삽시도 둘레길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 솔숲을 걷는 동안 잔잔한 파도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품격이 다른 도보여행이 가능하다. 중간중간 전망대와 쉼터가 있어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쉬어가며 걷기에 좋다. 울창한 나뭇가지 사이로 파도가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파도는 바람에 예민하다. 강하게 바람이 몰아치면 바람은 파도를 만들고 파도는 하얀 거품을 일으켰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숲이 우거져 바다로 내려갈 수는 없지만 아득한 풍경을 먼 발치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다. 
한참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다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산책로처럼 얌전하던 길이 어느 순간 비탈진 길로 변하더니 가파른 경사가 이어진다. 경사가 심한 곳에는 나무데크가 놓여 있어 위험하진 않다. 바다로 난 데크길을 따라 해안으로 내려가자 물망터가 나온다. 
물망터는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겨 있다가 썰물이 되면 맑은 생수가 나온다. 고여 있는 물을 재빨리 퍼내도 순식간에 맑은 물이 솟아나 웅덩이를 메워버린다. 예로부터 피부병 등에 효험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효험을 확인하려는 듯 사람들이 물을 떠 마시기도 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면삽지는 하루 두 번 삽시도와 떨어져 섬이 된다. 그때를 제외하면 언제든지 면삽지를 찾아볼 수 있다. 면삽지에는 동글동글한 모양의 조약돌이 지천으로 널렸다. 수북이 쌓인 조약돌들은 파도에 쓸리며 자그락자그락 노래를 들려준다. 동글동글한 조약돌은 그 모양이 너무 예뻐 탐이 날 정도다. 
면삽지에는 각양각색의 기암괴석과 해식동굴이 발달해 있다. 요즘 SNS에는 각종 동굴에서 찍은 사진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니 면삽지에서 동굴 인생 사진 하나쯤은 꼭 남겨봄 직하다.
길은 다시 오르내림을 반복하다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이어진다. 물론 바다를 조망하는 숲이다. 안타까운 것은 유난히 잦았던 바다의 불청객 태풍 탓에 잎이 많이 떨어졌다. 이윽고 길은 삽시도 최고봉인 붕굿뎅이(114.4m)에 이르고 연이어 사면을 따라 내려선다. 삽시도에는 황금소나무라 불리는 황금곰솔이 유명하다. 이것은 사시사철 푸르러야 할 솔잎이 푸르지 않고 황금색을 띠는 돌연변이종이다. 해 질 녘에 보면 또렷하게 황금색을 발한다고 한다. 현재 보령시 보호수(제2009-4-17-1호)로 지정되어 있다. 수령은 50년 정도로 높이는 8m 정도 된다. 황금곰솔은 해풍과 염분에 강해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으로 주로 심는다. 황금곰솔 군락지에서 밤섬해수욕장을 지나 밤섬 선착장에 닿으면 둘레길은 끝난다. 이후 점심께 대천행 배를 타고 섬을 나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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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식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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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곰솔이라 불리는 곰솔군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