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로 보는 역사 이야기

한글 보존의 염원이 담긴
'조선말 큰 사전 원고'

한글 보존의 염원이 담긴<BR />
글 유완식 독립기념관 자료부 학예연구관


한글 보존의 염원이 담긴

'조선말 큰 사전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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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 큰 사전 원고


1945년 9월 8일 경성역(현재 서울역) 조선운송 창고에서 의문의 원고 뭉치가 발견되었다. 이는 조선어학회에서 1929년부터 1942년까지 13년간 작성한 사전 원고의 최종 수정본인 「조선말 큰 사전 원고」였다. 이처럼 중요한 원고가 사라지게 된 배경은 1942년 10월 1일 식민지배 아래에서 우리말 연구와 정리·보급을 위해 사전 편찬 작업을 하던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일제에 검거되면서 함경도 함흥과 홍원에서 투옥된 ‘조선어학회 사건’에 있었다.

1929년 10월 108명의 각계 유지들은 우리말사전을 만들기 위하여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하였다. 일제는 조선어사전편찬회 발기인 108명 모두가 민족주의 사상을 지녔다고 판단하고 이들을 강제 해산시키기 위하여 함흥학생사건을 꾸며냈다. 이어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을 맡고 있는 정태진을 관련자로 검거하고 조선어학회가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민족주의 단체라는 거짓 자백을 받아냈다. 이에 따라 33명이 내란죄로 기소 당하였다. 이들 중 16명은 기소되었고, 나머지 12명은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기소된 16명 중 이윤재와 한징이 옥중에서 사망하고, 장지영·정열모 두 사람은 석방되어 최종 공판에 넘어간 사람은 12명이었다. 

회원들이 검거되면서 사전 원고는 경찰에 압수당하여 함흥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에 증거물로 제출되었다. 회원들 중 징역형을 선고받은 4명이 항소를 하였는데, 경성고등법원으로 사건이 옮겨지면서 관련 서류와 증거물도 같이 서울로 보내졌다. 하지만 증거물 가운데  「조선말 큰 사전 원고」 뭉치가 들어 있던 상자는 경성고등법원에 전달되지 않았다. 그리고 경성고등법원은 광복 4일 전인 1945년 8월 12일에 상고 기각 판결을 내리게 된다. 이 사건으로 조선어학회는 강제로 해산되었다가 해방 후 조직을 정비한 뒤 1949년 9월에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광복이 되면서 함흥감옥에서 풀려난 학자들은 서울에 모여 경찰에 압수된 원고를 찾기 위하여 백방으로 수소문에 나섰다. 그러던 중 경성역 조선운송 창고에서 인부들과 함께 화물을 살펴보던 역장이 상자 속 원고 뭉치를 발견하고 학회 측에 이를 알리게 되었다. 한글학회는 이 원고를 바탕으로 1947년에 『조선말 큰 사전』 2권을 간행하고, 3권부터는 『큰 사전』이라는 이름으로 1957년까지 총 6권을 간행하였다. 「조선말 큰 사전 원고」는 총 17권으로 이중 12권은 한글학회에, 5권은 독립기념관에 보관 중이다. 또한 등록문화재 제524-2호와 국가지정기록물 제4호로 지정된 상태로, 보물 지정을 위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자칫 어둠 속에 묻혀 사장될 위기에 있었던 「조선말 큰 사전 원고」가 다시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일제강점기 조선어 말살 정책에 맞서 한글을 보존하고자 하였던 국어학자들의 염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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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 사건 관련 한글학회 회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