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숨결

가을 앞에서 노래하는 음유시인을 만나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가을 앞에서 노래하는 음유시인을 만나다 <BR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글·사진 임운석 여행작가


가을 앞에서 노래하는 음유시인을 만나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대구 방천시장과 맞닿은 좁은 골목길. 신천대로의 높다란 옹벽에 기대어 이어진 그 골목길에 우리나라 최초 대중가수의 이름을 딴 길이 있다. 가수 김광석을 주인공으로 한 길이다. 김광석은 서른세 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지만, 아직도 우리는 그를 떠나보내지 않은 것 같다. 최소한 그 길에서만큼은. 아니 어쩌면 그는 한 번도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는 건 아닐까. 그의 노래와 목소리가 아직도 우리 가슴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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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운치가 더하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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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에 자리한 흑백사진관


음유시인, 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다


방천시장과 신천대로가 맞닿은 골목길. 그곳에 가면 김광석의 생전 모습과 그의 노래를 보고 들을 수 있다. ‘김광석 거리’ 혹은 ‘김광석 길’이라 부르는 이곳의 정식명칭은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다. 여기서 ‘그리기’란 ‘그린다’라는 의미와 ‘그리워하다’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 김광석 거리가 조성된 이유는 김광석이 거리가 있는 대구 대봉동에서 태어나 다섯 살까지 살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교편을 접고 사업차 상경하게 되자 그 역시 가족들과 함께 이사를 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동물원’ 등에서 보컬을 지낸 뒤 솔로로 나선 그는 김민기의 도움으로 학전소극장에서 1,000회가 넘는 공연을 마치게 된다. 이후로 통기타 가수로서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은 자신의 노래 ‘서른 즈음에’처럼 짧고 외로웠다. 1996년 1월 6일, 33년의 삶을 스스로 마감한 것이다.
김광석의 노래를 즐겨 듣는 사람들에겐 듣는 이유가 분명하다. 그는 슬픔을 노래하되 통속적이지 않고, 우울함을 노래하되 과장하지 않으며, 희망을 노래하되 상투적이지 않다. 많은 청춘이 일명 ‘아홉 앓이’를 경험하며 성장한다. 그중 스물아홉과 서른 즘에 찾아오는 아홉 앓이가 유난스럽지 않던가. 그들에게 노래 ‘서른 즈음’은 절망에서 희망으로 이끄는 등대 같은 곡이었다. 또 ‘이등병의 편지’는 군 입대를 앞둔 20대 청춘들에게 가슴을 울리는 눈물의 편지였다. 하지만 그의 노래는 방황하는 청춘에게만 효험(?)이 있는 게 아니었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라며 힘을 북돋아 준 노래, ‘일어나’는 좌절과 낙심으로 점철된 이 세상 모든 중년들에게 재기를 꿈꾸게 했고, 지난날을 담담한 감성으로 회고하듯 부른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추억을 먹고 사는 나이든 부모세대까지 끌어안았다.
그의 노래가 이처럼 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음악으로 여겨진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감성을 촉촉이 적시는 노랫말이고, 두 번째는 내유외강과 같은 잔잔한 곡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허무한 것 같지만 카랑카랑한 힘이 돋보이는 목소리이며 마지막 네 번째는 무대를 휘어잡는 조용한 카리스마다. 가을의 길목에 접어든 이맘때 대구 대봉동 방천시장 골목에는 그 노래들이 조용히 흘러나온다.



방천시장과 김광석의 운명적 만남


조선시대 전국 3대 시장은 평양장·강경장·서문장이고, 대구의 3대 시장은 서문·칠성·방천시장이었다. 방천시장은 대구 도심을 남북으로 흐르는 신천의 수성교 옆에 자리한 재래시장이다. 1960년대 이후에는 떡전, 싸전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싸전이란 쌀을 비롯한 곡물을 파는 가게를 뜻하는 대구 사투리다. 방천시장은 그때부터 1,000여 개의 가게가 문전성시를 이루며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원도심에서 외곽으로 개발중심축이 옮겨가자 시장은 나날이 쇠퇴해 급기야 존립 자체가 어려워졌다. 그러던 2009년 무렵, 방천시장을 살리자는 민·관의 바람에 따라 방천시장 활성화 계획이 문화체육관광부의 ‘문전성시’ 공모사업에 선정됐다. 이를 시작으로 상주예술가와 프로그램 참여 작가가 선정됐고 2010년에 벽화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현재 350m 길이의 골목은 김광석의 노래와 이미지에서 모티브한 작품 70여 점과 야외공연장 등으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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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복 작가의 작품 ‘사랑했지만’ 뒤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 이어진다

 



김광석의 노래가 물결처럼 흐르는 거리


신천을 따라 물 흐르듯 이어진 신천대로에 차량들의 질주가 시원하다. 그 옆 한갓진 옹벽에 기댄 김광석 거리 앞에 서면 직선으로 곧게 뻗은 골목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골목 들머리엔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김광석 조형물 ‘사랑했지만’이 있다. 손영복 작가가 2010년에 제작한 설치작품이다. 거친 브론즈의 질감을 살린 이 작품은 청춘의 고뇌를 토해내듯 노래하는 김광석의 모습과 잘 어울린다. 그래서인지 이 거리를 찾은 대부분의 사람이 사진 한 장쯤 찍고 가는 포토존이다. 그 뒤로 방천시장과 김광석에 대한 기록들이 이어진다.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잊혀져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가사 中


골목에 들어서면 활짝 웃는 김광석을 먼저 만난다. 미소년 같은 웃음 속에 굵은 주름들이 자글거린다. 골목에는 ‘사랑했지만’, ‘먼지가 되어’, ‘서른 즈음에’, ‘이등병의 편지’, ‘거리에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일어나’ 등 그의 노래가 물결처럼 흘러내린다. 감성적이고 호소력 짙은 그의 목소리가 골목을 가득 채우기도 하고 텅 비게도 한다. 한 발 두 발 골목을 걷노라면 나도 모르게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된다. 그 순간 노래의 감정에 온몸이 흠뻑 젖어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음악의 특별한 매력에 빠진 것이다.
박재근 작가는 벽화 제목과 소재를 김광석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가 그것인데 모델은 방천시장 상인 부부라고 한다. 사람들은 실물 크기로 제작된 김광석 조형물과 사진 찍기를 즐긴다. 실제 김광석이 그랬듯 조형물도 흔쾌히 어깨를 내어주고 환하게 웃는다. 164cm의 작은 키 덕분에 누구와 어깨동무를 해도 어색하지 않다. 벽면 한켠에 자물쇠도 걸어놓았다. 사랑과 추억을 간직하고픈 이들이 마음을 다해 걸어 놓았으리라. 그 뒤로 야외공연장이 있다. 버스킹 공연과 김광석 추모 공연 등 다양한 문화공연이 열린다. ‘응팔이’ 세대를 위한 추억 소환 아이템들도 많다. 갤러그, 테트리스 등 쪼그려 앉아서 해야 제맛인 게임들이 가게 앞에 줄 서듯 자리한다. 교련복과 검정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가게, 액세서리,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들도 문전성시다. 포장마차 주인행세를 하는 김광석의 벽화도 있다. 황현호 작가의 ‘석이네 포차’가 그것이다. 손님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술안주를 건네는 표정이 인상적이다.
포장마차 벽화 옆에는 조선일보에 연재된 박광수 작가의 ‘광수생각’ 중 김광석을 주제로 한 작품을 그대로 벽화로 옮겼다. 사람들이 왜 김광석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그의 음악을 왜 듣고 부르는지 그 이유가 두 편의 만화에 잘 담겨 있다.


“형, 소주 안주로 제일 좋은 게 뭔 줄 알아요?”
“그건 말이에요. 김광석의 노래예요.
소주 안주로는 김광석 노래가 최고라고요.”


김광석 거리 끝자락에 ‘김광석 스토리하우스’가 있다.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로 메모리얼존, 내 거실, MD 스토어 등으로 꾸며져 있다. 자필 악보와 수첩 등 김광석의 삶과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유품들이 1,000여 점에 이른다. 전시된 사진 중에는 코흘리개 유년 시절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하던 중·고등학생 시절, 딸과 함께 찍은 사진 등 가족이 아니면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아 팬이라면 꼭 한번 찾아볼 만하다. 평소 철학책을 즐겨 읽었던 그였기에 남겨진 메모에는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숱한 상념들이 빼곡하게 남아 있다. 감수성 짙은 노랫말 역시 그 상념에서 나온 것이다. 입장료 2,000원,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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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김광석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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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웃고 있는 모습의 김광석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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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생애를 들여다보는 김광석 스토리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