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답을 찾다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인 지식인

양심의 소리에 <BR />귀 기울인 지식인

글 이성주 역사칼럼니스트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인 지식인

 

“인간은 누구든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 진정한 자신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는 즉 양심의 소리다.”

갈수록 각박해져만 가는 우리 사회 속에서 ‘양심’이라는 단어는 사치스러운, 혹은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소리로 전락했다.

“양심을 따르라니, 누가 알아주기나 한다고?” 양심은 곧 손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여기 특별한 ‘일본인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사회적 성공을 버리고 양심을 따르다

후세 다쓰지(布施辰治)는 촉망받는 변호사였다.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법조인의 길을 걷던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성공한 인물이었다. “나는 변호사로서 세상에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나의 활동 장소를 법정에서 사회로 옮기겠다.” 이 선언 이후 그의 인생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1932년 변호사 자격 박탈 ▲1933년 신문지법 위반으로 실형 3개월 선고 ▲1939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선고, 변호사 등록 말소. 그는 일제의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히며 온갖 고초를 겪었다. 앞서 언급한 선언 중 ‘법정에서 사회로’라는 말은 조선인들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의지의 다른 표현이었다. 후세 다쓰지가 정부기록상 최초로 등장한 때는 1911년 경술국치 다음해다. 당시 명치법률학교(현 메이지대학)에서 재학 중이었던 그는 조선 청년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일제가 조선에 저지르고 있는 만행에 대해 알게 된다. 이러한 영향으로 조선의 의병운동을 다룬 『조선독립운동에 대해 경의를 표함』이라는 논문을 발표, 이 일로 경찰에 끌려가 호된 취조를 받았다. 그렇게 고독한 투사의 행보가 시작을 알렸다.

1919년 일본에서 조선인 유학생들이 독립선언서와 결의문을 선포한 2·8독립선언이 일어났던 때의 일이다. 백관수를 포함한 11명의 유학생들이 기소되자, 후세 다쓰지가 그들의 변호사로 나섰다. “조선의 독립은 정당한 요구다.” 일본인으로서 자국의 뜻을 거스르고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주장한 그의 변론은 파격 그 자체였다. 당시 그의 나이 40세였다.

이후에도 1923년 일왕암살사건을 주도한 박열 무료 변론, 관동대지진 당시 벌어진 조선인학살의 진상규명을 위한 자유법조단 구성, 조선총독부의 토지 수탈에 대항하는 변론 및 식민지 수탈정책 반대운동 등 거침없는 행보가 이어졌다. 제국주의 시대에 맞서 옳은 목소리를 높인 후세 다쓰지. 그는 ‘시대의 양심’으로 불리게 되었다.

 

양심의 소리는 되돌아온다

한국인도 아닌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고, 한국인을 위해 헌신했던 이유는 무얼까. 이쯤에서 서두에 밝힌 후세 다쓰지의 말을 다시 꺼낸다. “인간은 누구든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 진정한 자신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는 즉 양심의 소리다.” 그가 말한 ‘양심의 소리’. 그 소리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후세 다쓰지의 아버지는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 묵자(墨子)의 사상을 따랐다. 묵자는 한 마디로 ‘겸애(兼愛)’라 정의할 수 있다. 좀 더 쉽게 풀이하자면, ‘남을 위함이 곧 나를 위함이다’라는 말이다. 후세 다쓰지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그 사상을 받아들였다. 모든 인간을 똑같이 사랑하는 것. 자신을 사랑하듯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세상이 이로워진다는 묵자의 뜻은 그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척도가 되었다.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소리가 이끄는 대로 살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양심을 따르기보단 그것을 저버리는 게 이득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양심의 소리를 외면해 자신의 안위를 살피는 것은 곧 능력으로 포장되고, 그런 ‘뻔뻔한’ 삶의 방식을 권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양심’이라는 단어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용례가 아닌 타인을 향한 질책으로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양심의 소리는 언제가 됐든 결국 반향(反響)을 만나 스스로에게 되돌아온다. 후세 다쓰지는 일본 패망과 함께 변호사로 다시 복귀하게 되었다. 또한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2004년 우리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일제강점기 시절 그를 비난했던 일본은 이제 그를 시대의 양심이라 추앙하며 기리고 있다.

 

급하게 돌아가는 세상. 한 발 뒤처지면 타인에게 짓밟힌다는 강박은 여전히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잰 걸음을 잠시 멈추고 우리 안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 그 소리가 세상을 어떻게 이롭게 할 수 있는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언제가 됐든 그 울림이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사실만큼은 약속할 수 있다. 늘 그래왔다고, 우리 역사는 넌지시 전해주고 있지 않은가.




 이성주

시나리오 작가 겸 역사칼럼니스트.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글쓰기를 목표로 『조선의 민낯』, 『왕들의 부부싸움』과 같은 역사서를 출간한 바 있다.

최근에는 국제정치에 관련된 연구 및 집필에 열중하고 있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시리즈 1, 2, 3권을 출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