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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독립운동

독립운동가 ‘회고록’,
한국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사료이다


 

글 이계형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독립운동가의 ‘회고록’은 개인 기록이기 전에 우리의 귀중한 자산이다. 

비록 ‘회고록’이 주관적인 해석이나 감정에 몰입되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수도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식적인 사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생생한 역사의 증언을 담고 있기에 그 자체로 가치가 충분하다. 

이에 필자가 확보한 500여 건의 ‘회고록’ 목록을 분석하여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독립운동가의 생생한 증언이 담긴 회고록

한국의 독립운동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끊임없이 전개된 항일투쟁일 뿐만 아니라 민족문제를 해결하고 궁극적으로는 근대 민족국가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러한 움직임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전개되었고, 시기와 역사적 상황, 주도한 계층의 성격에 따라 방법을 달리했다. 19세기 후반부터 경술국치 이전까지는 동학농민운동, 의병, 계몽운동, 비밀결사(신민회), 순국, 5적 처단(의열활동), 국채보상운동 등이 펼쳐졌고, 경술국치 이후 광복을 맞은 20세기 중반까지는 만세운동, 실력양성운동, 무장투쟁, 의열투쟁, 학생운동, 외교운동, 노동쟁의, 소작쟁의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이를 한국독립운동사라고 하는데, 학술적으로 연구하여 역사적 가치로 자리매김하는 작업의 결과물 역시 한국독립운동사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주도했거나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들을 독립운동가라 한다. 이에는 계층과 계급이 없었고 오로지 하나의 염원, ‘독립’밖에 없었다. 50여 년간 독립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은 5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다만 아쉽게도 2023년 6월 현재 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하는 독립유공자는 17,748명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 생존하신 분은 10명도 채 안 된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독립한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유물일 수도 있고 생가, 활동지 등도 있지만, 회고록도 있다. 회고록이란, 자서전, 구술자료, 신문기고 글, 수기(手記) 등을 일컫는다. 수기의 경우는 일기의 형식도 있고 영문으로 작성한 것도 있다.

모든 역사는 사료가 없이는 써질 수 없듯이 한국독립운동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료는 역사 연구에 필수 불가결하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은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의 사건, 인물 등의 실증을 밝히기 위해서는 기존 사료를 재해석하거나 새로운 사료를 발굴해야 한다. 물론 역사가에게는 사료가 객관적인지, 위서(僞書)인지를 가려낼 줄 아는 혜안도 있어야 한다. 그 결과 역사가 풍부해지고 새로운 재해석도 가능해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과거 역사가 불편부당하게 복원되어야 한다.

한국독립운동사 사료는 그 어느 시기의 역사보다도 훨씬 많은 사료가 존재한다. 한국독립운동 자료는 단체·기관이나 개인 등이 당대에 작성한 문서·책자·신문·잡지·보고서·개인 일기·문집 등 다양하고, 국내뿐 아니라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 이에 더하여 독립운동가들이 자신의 독립운동을 글로 쓴 회고록(자서전 포함)으로 혹은 살아생전에 제작한 증언집이 있다. 이러한 회고록의 경우 대개 2차 자료에 분류하기도 하지만, 많은 연구자가 이를 인용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애독하기도 한다. 회고록은 자기 경험을 기록한 것으로 어디에서도 알 수 없는 내용들이 담겨 있기에 그렇다. 또한 회고록은 생생하고 흥미로운 내용들로 꾸며져 있어 일반인들도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고, 독립운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일반 대중이 애독하는 회고록이 편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일반인들이 많은 독립운동가 회고록의 존재 가치를 모르기도 하고, 이를 손쉽게 구할 수 없다는 이유가 크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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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김구의 아들 김신(金信)이 편집하여 1947년 12월 15일 발행한 『백범일지(白凡逸志)』의 1948년 3월 1일 재판본 표지,

1971년 여성동아 편집부가 3·1운동 관련한 여성들의 기고문을 엮은 『기미년 횃불을 든 여인들: 아아 삼월』의 표지,

1958년 이함덕이 필사한 『홍범도 일지』 중 한 페이지


독립운동 분야별 회고록 살펴보기

이에 개략적이지만 독립운동 분야별로 회고록을 살펴보고자 한다. 회고록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히는 것은 단연 『백범일지(白凡逸志)』이다. 1947년 12월 국사원에서 처음 출판된 이후 지금까지도 세대를 달리하면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백범일지』에 진솔하고 감동적으로 담겨 있고, 김구가 27년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어온 우직함과 자신의 전 생애를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망명 기록인 이상룡의 『서사록(西徙錄)』과 김대락의 『서정록(西征錄)』 등이라 생각한다. 이는 서간도 망명객의 한(恨)과 독립의 염원이 그대로 전해져 감동을 준다. 이어 계봉우의 『꿈속의 꿈』은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강제 이주를 당한 후 자신의 생애를 회고하며 쓴 것으로 개인 일상과 독립운동에 관하여 생생한 기록을 담고 있다. 
회고록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역시 3·1운동이다. 이와 관련하여 김광섭의 『나의 옥중기』, 박영준의 『한강 물 다시 흐르고』 등과 같이 책으로 출판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강점기 혹은 광복 이후 신문이나 잡지에 당시 상황이나 활동 등을 기고한 글들이다. 특히 1971년 여성동아 편집부가 그러한 글들을 엮어 『기미년 횃불을 든 여인들: 아아 삼월』이란 책자를 펴냈는데, 권애라·김순애·김신의·김영순·나용균·박인덕·박현숙·이신애·신의경·이효덕·채혜수·최매지·황신덕 등의 글이 실려 있다. 또한 1977년에 정음사가 펴낸 『일제하 옥중회고록』 1~5권에는 정환직·신덕순·안중근·한용운·양근환 등 60여 명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다음으로는 광복군들의 회고록이나 구술자료가 많다. 이는 이들이 광복 후에도 비교적 오랫동안 생존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권기옥·김광언·김국주·김문택·김영관·김준엽·김학규·김홍일·김효숙·노영재·박금녀·박기성·박영만·박영준·박해근·신정숙·우재룡·안병무·오희영·이범석·이자해·장기영·장준하·조경한·지청천·최덕신·태륜기·황갑수·황학수 등의 회고록이 있다. 자세한 책명은 지면 관계로 생략한다. 광복군과 마찬가지로 중국 관내에서 활동하였던 조선의용군 관련 회고록도 있다. 대표적으로 김학철의 『최후의 분대장』·『항전별곡』·『격정시대』·『나의 길』·『태항산록』을 비롯하여 김사량의 『노마만리(駑馬萬里)』, 신상초의 『탈출: 어느 자유주의자의 수기』, 엄영식의 『탈출: 죽어서야 찾은 자유』 등이 있다. 
의병 관련 회고록이 그다음을 차지한다. 김용구·노응규·문석봉·문위세·민용호·박주대·서상렬·신덕균·심남일·안규홍·양한위·여중룡·유준근·이강년·이긍연·이면재·이석용·이정규·이조승·임병찬·전기홍·정운경·조희제·채기중 등과 필자 미상의 의병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원문을 활자화하거나 영인하여 출판한 예도 있지만, 대부분은 출판·번역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실제 이를 접할 수 있는 대상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고 어렵지 않아 일반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것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회고록이다. 상대적으로 회고록 숫자는 적지만, 여성으로서 독립운동 당시의 일상이나 활동을 세밀하게 그린 이유에서다. 대표적으로 이은숙의 『서간도시종기』, 이화림의 『진리의 향도 따라』, 이해동의 『남중록』, 정정화의 『녹두꽃: 장강일기』, 지복영의 『민들레의 비상』, 최선화의 『제시의 일기』, 한도신의 『꿈갓흔 옛날 피압흔 니야기』, 허은의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등이 손꼽힌다. 이들 회고록은 서명을 바꾸거나 출판사를 달리하여 개정판을 내며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이주 한인들이 기반이 되어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만주·연해주·미주 지역의 회고록도 적지 않다. 만주의 경우 강우건·강상진(대한군비단)·최봉설(15만 원 탈취사건)·이우석(청산리전투·신흥무관학교) 등의 수기, 정이형의 『회고록』, 홍범도의 『홍범도 일지』, 김학현의 『빨찌산 수기』, 강근(강회원)의 『나의 회상기』 등이 수집되어 자료집으로 간행되었다. 하지만 1930년대 만주에서 활동하였던 독립운동가들의 회고록은 중국 내에서 적지 않게 출판되었지만,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해 국내에 소개된 경우는 드물다. 

연해주와 관련해서는 이인섭의 『망명자의 수기』, 김규면의 『노병김규면비망록』, 박노순의 『늙은 빨찌산들 회상기 초집』, 최고려의 『최니꼴라이 자서전』, 황운정의 『자서전』 등이 자료집으로 간행되었다. 미주의 경우는 현순의 『현순자사(玄楯自史)』, 곽임대의 『못잊어 화려강산』, 최봉윤의 『떠도는 영혼의 노래:민족통일의 꿈을 안고』, Easurk Emsen Charr(차의석)의 『The Golden Mountain(금산)』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에 차경수의 『호박꽃 나라사랑: 대한여자애국단 총무 차경신과 그의 가족 이야기』 등과 같이 한인 이주와 삶을 기록한 회고록이 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영문으로 출판되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다. 

이외에도 광주학생운동(강석원·노동훈·박준채·이기홍·이석태·장매성·정동수·정우채·최순덕·최은희 등), 2·8학생운동(김도연·백관수·변희용·여운홍 등), 6·10만세운동(박내원·박용규·이동환·이지탁·이천진·조두원·최형연·특백생 등), 한글운동(이극로·이희승·장지영·정인승·최현배 등), 1940년대 학생운동(심재영·이기을·함석헌 등) 등과 관련한 회고록이 있다.


회고록 전수 조사를 추진하고, 새로운 회고록 자료를 발굴해야

500여 건의 회고록을 검토하여 나름 분야별로 정리하였지만, 전부 담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경향성은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먼저 독립운동 관련 기관에 제의하고자 하는 것은 회고록의 전수 조사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생존 독립유공자가 10명이 채 안 되고 대부분 고령이기에 더는 회고록이 제작되기는 힘들다고 한다면, 모든 회고록을 집대성하고 이를 DB화하여 서지 사항 함께 역사적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 이후 이를 토대로 활용 방안을 세워야 한다. 

이와 함께 새로운 회고록 자료를 발굴해야 하고, 오래전에 출판한 회고록의 경우연구자나 일반인이 쉽게 구할 수 없다면 재출판도 고려해야 한다. 일제강점기 혹은 광복 이후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한독립운동가의 글을 한데 모아 책자로 출판해야 하며, 한문이나 영어로 집필된 회고록의 번역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독립유공자 중에는 외국인도 70여 명에 달하는데, 이들의 회고록도 수집하여 한국독립운동을 어떻게 지원했고 어떤 활동을 하였는지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