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립운동가

어등산에서 일경총탄에 순국한

호남창의대 의병장 조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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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학예실


어등산에서 일경총탄에 순국한

호남창의대 의병장 조경환




구한말 호남지역은 의병 활동의 중심지였다. 여기에는 일본군에 맞서 활발한 투쟁을 벌인 의병장의 역할이 컸다. 김준에서부터 김원국과 박용식까지. 그리고 이들 사이를 이으며 호남지역 의병항쟁의 명맥을 계승한 사람이 바로 조경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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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권수호를 위해 의병이 되다

조경환은 유년시절부터 꾸준히 유학에 정진하다가 전국을 돌며 조선 정국을 살폈다고 전해진다. 귀향 후에는 서당을 개설하여 후학을 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며 일본의 국권 침탈이 본격화되자 조경환도 국권수호를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결심하였다.당시 호남지역 의병전쟁을 이끌던 김준 의병장은 조경환을 찾아와 시국 현안을 논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조경환이 의병 참여를 결정하였다. 1907년 12월 김준 의진(義陳)에 합류하여 좌익장(左翼將)을 맡고, 호남지역에서 벌어진 수많은 전투를 주도하였다. 또한 여러 의병이 연합한 전투에서도 선봉장을 맡아 큰 활약을 펼쳤다.


호남지역 의병투쟁을 이끌다

1908년 4월 일본군과 교전 중에 김준 의병장이 전사하자 조경환은 흩어진 의병을 수습, 재정비에 나섰다. 이에 전라북도에서 활동하던 전수용 의병장도 힘을 보태며, 2백여 명의 의병이 조경환을 중심으로 결사투쟁을 준비하였다. 조경환 의진은 도통장 박용식, 선봉장 김원국 등으로 구성되어 전라남도 각지에서 일본 군경에 맹렬히 맞서 싸웠다.

한편 일본군은 어등산 일대를 수색하며 포위망을 좁혀갔고, 1909년 1월 두 시간여 교전 끝에 조경환을 비롯한 20여 명의 의병이 전사했다. 당시 조경환은 총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의병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불태우며 의병들을 지키고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진다. 정부는 조경환의 공적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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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 조경환 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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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 전수용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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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환 의진 활동 기사(『대한매일신보』, 1908.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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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환 의진 활동 기사(『대한매일신보』, 1909.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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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일지 陣中日誌』의 조경환 관련 내용. (토지주택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