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40년을 살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을 쓸 때마다 창작의 고통을 겪었지만 누구나 살면서 이런저런 어려운 일들이 있잖아요. 상처도 있을 테고요.
제게는 그런 것들이 글을 쓰면서 많이 치유됐어요. 어렵게 겪은 일들을 글로 쓰면서 승화도 했어요.
문학 덕분에 즐겁고 행복하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작품을 사랑해주신 독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린이·청소년소설 작가로서 아이들이 처한 현실을 쓰다 보니, 작품의 무대와 주제가 많이 협소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점이 답답해서 시·공간을 넓혀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대다수의 한국 청소년들은 입시와 경쟁에 내몰린 채 발밑만 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 친구들에게 문학으로나마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시절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고, 더 넓은 세상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일제강점기에 하와이로 시집간 소녀들의 이야기 『알로하, 나의 엄마들』(2020)이나 일본·러시아·미국을 넘나들며 운명을 개척한 여성들의 이야기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2016)가 그렇게 나왔습니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를 쓰기 위해 역사 공부를 하던 중 ‘사진 신부’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게 됐어요.
그 시절 많은 한국 남성이 사탕수수 농장에 취업해 하와이로 떠났는데, 이 남성들은 대부분 ‘사진 중매’를 통해 한국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직접 한국에 건너와 선을 볼 수 없으니, 사진 한 장과 간략한 정보만 교환한 후 여성이 하와이로 이주하는 식이었죠.
결혼해서 머나먼 나라로 떠나기에는 너무나 앳된 소녀들의 모습을 보며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사진 한 장에 운명을 걸게 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역사 속 흑백 사진으로만 남은 소녀들에게 숨결을 불어 넣고 싶었죠.
무엇보다 그들을 단지 어려운 시기를 살아낸 가엾은 여성이 아닌 역동적으로 삶을 개척한 인물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2023년에 재연까지 공연을 했는데요. 볼 때마다 제 마음속에만 있던 장면들이 무대 위에서 실제로 벌어지니 정말 신기했습니다. ‘사진 신부’들이 실제로 하와이에서 계모임을 주도하는 등 한인들의 경제적 사정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는 기록이 역사적으로도 남아있는데요.
뮤지컬 무대를 통해 이러한 주체적이고 생명력 강한 모습이 잘 그려졌더군요. 객석에서 독자·관객과 같이 울고 웃으며 관람하니 되려 자극이나 영감을 받기도 한 선물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역사를 알수록 돌아가신 할머니의 삶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내 할머니는 한글도 몰랐고, 평생 농부로 고생만 하셨지요. 어렸을 때는 그런 할머니의 삶이 시시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할머니처럼 이름 없이 살다 간 삶 또한 역사에 큰 이름을 남긴 그 어떤 분들 못지않게 영웅적인 삶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할머니의 삶에 대한 이해는 한국 역사의 주류 서사에서 소외되고 간과된 목소리와 이야기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됐지요. 저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강인한 생명력, 도전 정신과 개척 정신을 지녔던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습니다.
어린이·청소년문학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장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이야기들이 어려서부터 좋았던 것 같아요. 덕분에 어른이 되어서도 어렸을 때 읽었던 책들의 힘으로 세상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러니까 제가 책을 통해서 세상을 배우고, 인간에 대한 믿음을 배우고, 위로받은 것처럼 어린이들도 제 책에서 그런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감사합니다. 최종 후보가 발표된 뒤 4월에는 수상자를 발표하는 불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도 다녀왔어요. 벌써 오래 전 일 같네요. 후보가 되기까지, 신청 과정에서부터 정말 많은 분이 고생하시거든요. 최종후보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과 동시에 안도감이 들었어요. ‘최소한의 보답은 했구나’ 싶어서요. 개인적으로도 기쁘고 영광이고요. 그동안 한국의 그림책이 많이 세계에 알려진 것에 비해 문학 작품들은 번역이라는 장벽을 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조금이나마 한국의 어린이·청소년 문학을 알렸다는 것이 기뻐요. 오랫동안 이 분야의 글을 써온 사람으로서 제 몫을 조금이라도 했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입니다.
얼마 전에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를 읽은 아랍어권 독자들과 줌으로 북토크를 했었어요. 언어와 역사와 문화가 다른 낯선 지역의 독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것 자체가 신기하더라고요.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한국의 특수한 이야기인데도 소설 속 여성들의 삶에 공감하며 감동을 느꼈다는 해외 독자들의 반응이 신기하고 뿌듯했지요. 제 책을 읽고 한국의 역사를 처음 알았다는 반응엔 보람을 느꼈습니다.
지난 40년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제게는 이야기를 구상하고 쓰는 게 특별한 일이라기보다는 그냥 일상의 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힘들거나 고생스럽거나 지루했을 수 있는 삶을 이야기로 승화시키면서 즐겁게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죠.
작품마다 각기 다른 소재와 주제를 담지만 제가 작품 전체를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건 다음과 같아요. 어린이·청소년은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과 존중, 응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또한 우리는 결코 혼자 살 수 없으며 나보다 약한 존재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함께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