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살피다

독립운동과 유물, 유품

독립운동과 유물, 유품

글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


독립운동과 유물, 유품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와 찬란한 문명을 일구어왔다. 고려시대 상감청자부터 각종 석탑과 불화, 조선 선비들의 서예화부터 화원 김홍도 등의 풍속화까지 한반도 전체를 문화재 창고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외국인들이 탐낸 것들도 많았다. 우리나라에 있던 수많은 문화재는 임진왜란·병자호란 등 외세의 침략에 의한 전란으로 소실되거나 어느 틈엔가 유실되는 사례가 많았다.

           


         

외세에 시달렸던 우리나라 유물


1) 외규장각 도서

일제강점기 36년을 거치면서 수십만 점의 유물이 해외로 반출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략하던 중에 약탈한 ‘외규장각 도서’는 한국과 프랑스 사이 외교 문제가 되기도 했다. 1975년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 현지에서 외규장각 도서를 발견하면서 반환운동이 본격화되었다. 1993년 김영삼 정부 당시 프랑스는 고속철도사업권을 두고 독일과 경쟁하였는데, 사업권 획득을 위해 방한한 미테랑 대통령이 외규장각 도서 일부를 반납하며 전체 반환을 약속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성사되지 못하다가 2011년에야 비로소 대여 형식으로 영구 반환되었다.


2) 직지심체요절

기구한 운명을 가진 문화재는 한두 점이 아니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의 경우, 1911년 골동품 수집가 앙리 베베르(Henry Vever)를 통해 구매됐다가 그가 죽으면서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기증되었다. 매매와 기증의 과정을 거쳐 박물관이 소장했기 때문에 반환을 위한 법적 주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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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장렬왕후존숭도감의궤, 반환된 외규장각 의궤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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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심체요절

         

3) 조선왕조실록과 팔만대장경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국보 제151-3호)’의 경우도 참으로 기구하다. 원래는 강원도 평창 월정사 오대산사고에 788책이 보관되어 있었으나, 1913년 조선총독부가 도쿄대 부속도서관으로 무단 반출했다. 문제는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화재가 발생해 책 대부분이 소실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2006년 남아있는 실록이 일본으로부터 반환되기는 했지만 현재는 관리 문제를 두고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팔만대장경’도 조선왕조실록과 비슷한 운명이 될 뻔하였다. 일찍이 조선시대부터 팔만대장경의 가치를 알아보고 호시탐탐 노리던 일본은 일제강점기 당시 팔만대장경을 가장 가치 있는 반출 품목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하지만 해인사 승려들의 극렬한 저항과 운반 및 관리 문제 등으로 인해 결국 반출을 포기했다.경복궁 복원사업이 본격화되기 전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궁궐 안뜰에 석탑을 비롯한 불교 유물들이 늘어서 있던 때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이상한 모양이다. 유교 국가의 궁궐에 불교 유물이 있다니 말이다. 실은 일제가 조직적으로 조선의 문화재를 유출시키면서 임시 보관소로 궁궐을 활용한 까닭이었다. 또한 광복 이후 유물을 보관할 만한 제대로 된 시설이 없었기에 다시 궁궐을 활용한 이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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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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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에 보관된 팔만대장경

          


        

독립운동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유품


1) 이상설
유물 가운데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들의 손길이 닿은 유품들은 특히 기억해봄직하다.
이상설은 대한제국의 신하로, 을사늑약 반대 상소를 수차례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결시도까지 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실패하고 이후 만주와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의 조직적 기반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만주에 서전서숙이라는 교육기관을 세우고 이준·이위종과 함께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해 조선의 주권을 지키고자 치열한 투쟁을 벌였고, 이후 연해주에서 수립된 대한광복군정부의 정통령을 역임하기도 했다. 독립기념관은 2007년 이상설과 그의 부친 이용우의 호패를 수집해 세상에 공개했다. 이상설과 관련된 극히 드문 유품이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2) 안중근
안중근의 경우에는 뤼순 감옥에서 남긴 서예 작품이 인상적이다. 1909년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서 을사늑약을 주도해 조선을 보호국으로 만든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7발이 들어가는 권총을 소지한 채 역에서 대기하던 그는 이토 히로부미가 나타나자 3발을 급소에 명중시키고 남은 4발로 남은 일행들을 저격했다. 지금도 하얼빈 역을 가면 당시의 저격 장소와 이토 히로부미가 쓰러진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안중근이 거사를 위해 하얼빈 역을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중국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관할 지역이었다는 점이다.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성공한 후 러시아 군경에게 체포되면 러시아 법정에서 투쟁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와 일본은 밀통하여 불법적으로 안중근을 일본 관할 지역인 뤼순으로 넘겼다. 결국 계획과는 다르게 뤼순감호소에 수감된 채 법정 투쟁을 벌이게 된 그는 이 기간 동안 50여 점의 유묵을 남긴다. 1910년 2월 14일 사형언도일부터 3월 26일 순국 직전까지 쓰여진 유묵은 안중근의 유일한 유품이다. 그간 뤼순감옥박물관에 보존되다가 예술의전당 등에서 <안중근 서예전>이란 이름으로 국내에 공개되기도 하였다.


3) 윤봉길
다행히도 윤봉길의 유품은 비교적 꽤 많이 보존되어 있다. 보물 제568호로 지정된 13종 68점이 그것인데, 충청남도 충의사,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분산 보관되어 있다. 특히 충의사에 소장된 10종의 유품은 중국 홍커우공원 의거 당시의 소지품이어서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중 회중시계는 의거 직전 윤봉길이 김구와 마지막 작별을 나눌 때 바꾸어 가졌던 물건이다. 윤봉길의 유품은 지갑·화폐·인장뿐 아니라 『월진회창립취지서(月進會創立趣旨書)』, 『농민독본(農民讀本)』 등도 있는데, 특히 『농민독본』은 그가 농촌부흥운동을 위해 노력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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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설 호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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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유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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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독본』

        

4) 안창호
평안도와 미주를 기반으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안창호는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세우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민대표회의가 실패로 돌아가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위기에 빠지자 미국에서 체류하며 이승만의 탄핵과 개헌을 추진하였고, 동시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재정을 지원했다. 1926년에는 거금 2만 원을 들고 상하이로 귀환해 원세훈 등과 대동단결했다. 또한 한편으로는 민족주의자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주도하던 김구·이동녕 등의 협조를 구하고, 홍남표·정백 등이 활약하고 있는 사회주의 진영을 설득해 1920년대 민족유일당 운동을 추진해 나갔다.
세계를 아울렀던 안창호의 활발한 독립운동은 현재 도산안창호기념관에 소장된 그의 일기와 여권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얼마 전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는 그의 후손들을 직접 만나 독립운동 당시 안창호가 사용했던 가방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이밖에 김구가 보낸 태극기·독립운동가들의 편지·서적·도산일기·한문성경·태극기 등의 유품이 유가족의 기증을 통해 독립기념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5) 김구
김구는 광복 이후 서울로 귀환하여 경교장에서 활동했는데, 덕분에 최후의 유품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안두희가 쏜 총탄에 맞아 숨질 때 입었던 피 묻은 한복(혈의)을 비롯해 임시정부인사들과 회의를 하던 공간과 평소 쓰던 집기들까지 체계적으로 보존된 상태이다. 유품 가운데 특히 인상적인 것은 ‘속옷 밀서’다. 1948년 북한 내 민족진영의 비밀조직원들이 김구·이승만 등에게 민주조선인민공화국을 수립하려는 북한의 동향을 보고한 문서로서, 속옷에는 빼곡히 내용이 적혀있고 인장까지 찍혀있다. 속옷 밀서는 광복 이후 우리나라 정세가 결코 녹록치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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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안창호기념관(국가보훈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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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의 혈의, 속옷 밀서

       

오래된 물건이 그 자체로 값어치를 띄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물건이 가진 이야기다. 물건을 사용한 사람, 그리고 거기에 얽힌 이야기가 오래된 물건을 의미 있는 ‘유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유물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독립운동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심용환

성균관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역사교육학을 전공했다. 현재 팟캐스트 <진짜 역사 가짜 역사>를 통해 재미있고 올바른 역사 이야기를 전파하고 있으며, CBS와 공동으로 <심용환의 근현대사 똑바로 보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헌법의 상상력』, 『심용환의 역사토크』, 『단박에 한국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