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보는 세계사

프랑스 대혁명과 그 이후

프랑스 대혁명과 그 이후

글 고종환 아주대학교 외래교수

 

프랑스 대혁명과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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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의 죽음

(1793, 자크 루이 다비드(J. L. David), 루브르)


그림을 보면 역사가 보인다. 명화 속에 숨겨진 세계의 독립운동사와 국난극복사를 살펴보는 ‘명화로 보는 세계사’. 그 첫 번째 작품은 자크 루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이다.


다비드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혁명과 관련 있는 그림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마라의 죽음>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견주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이 그림은 프랑스 대혁명 발발 이후 4년이 지난 어느 날, 당시 혁명파이자 좌파 정치인(자코뱅파) 리더 중 한 명이었던 마라가 자신의 욕실에서 암살당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우리는 이 그림을 통해 대혁명 이후 매우 혼란했었던 18세기 말, 프랑스 정치계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자크 루이 다비드는 프랑스 회화의 간판스타로 화가로서는 물론, 정치가로서도 프랑스 정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프랑스 대혁명 때에는 좌파 정치인들이 주류였던 ‘자코뱅파’의 일원이 되어 직접 활동하기까지 했다. 이와 같은 정치적 행보를 통해 대혁명 후 혁명파와 좌파의 리더 중 한 명인 마라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갖게 됐다. 마라의 암살은 다비드는 물론, 모든 혁명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줬다. 마라와 함께 했던 정치인들은 그의 죽음을 최대한 영웅적으로 묘사할 필요성을 느꼈고, 평소 마라와 친밀했던 다비드에게 그림을 의뢰했던 것이다. 그런 의도에 부합하여 다비드는 암살당한 마라의 모습을 최대한 평온하고 엄숙한 모습으로, 마치 성인의 죽음처럼 묘사했다. 또한 죽는 순간까지도 왼손에는 편지를, 오른손에는 펜을 든 모습으로 그려, 마치 죽음의 순간에도 프랑스 국민들을 위해 애쓴 듯한 모습으로 멋지게 그렸다. 그래서 이 그림은 만약 <마라의 죽음>이라는 제목이 없다면 한 남자가 무엇인가 열심히 일하다가 깜박 잠이든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바로 그런 정치적 의도 하에 최대한 마라를 영웅적으로 미화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혁명 후 불어온 피바람

대혁명 후 프랑스 정계는 혁명을 주도하며 강경한 정책을 주장하던 좌파(자코뱅파)와 온건한 개혁을 주장하던 우파(지롱드파)로 나누어져 갈등을 빚고 있었다. 그중 당시 사람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바로 국왕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리 문제였다. 기득권 계층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고, 게다가 국왕부부는 반혁명과 구체제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처벌에는 모두 동의했지만 문제는 처형방법이었다. 급진파인 좌파진영에서는 반드시 공개처형을 하자는 입장이었고, 온건파인 우파 진영에서는 그냥 감옥에 가두자는 입장이었다.이처럼 국왕 부부의 처벌방식을 놓고 대립 중이던 1791년 6월 20일, 모든 프랑스 국민들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그 유명한 ‘바렌 도피 사건’이다. 국왕부부가 한밤중에 튈르리 궁을 빠져나와 왕비의 고향인 오스트리아로 몰래 탈출하려다 국경 근방인 바렌 지역에서 붙잡혀 다시 파리로 압송된 이 사건으로 인해 국왕이 조국과 국민들을 버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모든 프랑스 국민들의 큰 분노를 샀다. 결국 이들의 처벌은 국민공회의 투표로 판가름 나게 됐는데, 국왕 부부의 해외도피가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전격적으로 공개처형이 결정되게 된다.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가 공포정치의 상징인 기요틴(단두대)에 의해 공개처형을 당하고, 같은 해 10월 16일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공개처형이 수많은 인파가 몰려든 가운데 혁명광장에서 이루어졌다. 이처럼 온건파 정치인들과 기득권 계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왕 루이 16세를 공개적으로 처형했기 때문에 그들의 불만은 대단했다.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온건파와 기득권 계층은 국왕의 처형을 공개적으로 주도했던 급진파 정치인들에 대한 위해를 끊임없이 계획하게 됐다. 결국 급진파 정치인 리더 그룹의 인물 중 가장 서민들에게 관심이 많아서 ‘시민의 친구’라는 별명까지 있었던 마라에게 접근했던 것이다. 즉 여러 급진파 정치인들 중 가난하고 불행한 서민을 통해서 가장 접근이 용이했던 마라를 암살 타깃으로 정했고, 마라가 관심을 보일만 한 가녀린 여인이었던 샤를로트 코르데를 통해 국왕이 처형된 같은 해 여름, 마라의 욕실에서 그를 암살하게 됐던 것이다.


고종환

한국 프랑스문화학회의 재무이사이자, 아주대학교와 경상대학교 외래교수. 프랑스 문화와 예술, 서양연극사, 광고이미지 등을 강의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한권으로 읽는 연극의역사>와 <오페라로 배우는 역사와 문화>, <글로벌 다문화교육>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