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동자로서 지나칠 수 없었던 3·1운동

황해도 황주군 독립운동가 김건조

글. 자료발굴TF팀 그림. 류주영
  • 1919년 3월 2일 인근지역 황해도 황주군황주읍에서 시작한 만세의 울림이 겸이포에도이어졌다.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시가행진을진행하기로 계획하였다.

  • 3월 3일 밤 9시 반 경, 안태직, 김정하 등 천도교인을중심으로 30여 명이 대한독립만세의 소리를 높여 울리기시작하였다. 부근의 시민들이 호응하여 그 수가 2백 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 겸이포 이곳에는 특히 제철소 근무자, 노동자들의참여가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일본인 경영진의 지배와만행에 대한 반감이 컸기 때문이다. 김건조 역시미쯔비시 제철소에 일하는 노동자로서 만세의함성을 높였다.

  • 운동이 커지게 되자, 헌병과 경찰을 동원하여 총검으로 시위행진을 저지하고, 주동인물을 검속하기 시작하였다. 그날 밤 김정하를 비롯한 제철소에 근무하던 청년 9명이 구속당하여 곤욕을 치렀다.

    그 후에도 겸이포 읍내에서는 노동자들의 동태를 주목하는감시가 많아졌다. 그럼에도 경찰서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순사 17명이 총사직하며 일본인들에게 큰 충격과 경각심을 안기기도 하였다.

  • 적 헌병대에서는 검거된 애국 동포들을 혹독한고문으로 심문하였다. 그러나 일제 경찰에게 붙잡힌김건조는 일제의 식민통치에 저항하고자 불굴의의지를 드러내었다.

  • 김건조는 징역 1년의 판결을 받았으며정부는 황해도 황주지역 3·1운동을 위해헌신한 김건조의 공로를 인정하여2024년 애족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