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각기 다른 시기에 다른 장소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용기를 낸 세 명의 여성 독립운동가가 있습니다.
사는 곳도, 직업도, 나이도 다르지만 오직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세 사람.
비밀결사에 참여하고, 독립선언서를 전달하고, 이름까지 바꿔가며 독립운동에 앞장선 이들의 삶을 따라가봅니다.

  • 이선경 저는 수원에서 태어나 1918년 상경해 숙명여학교에 다녔습니다. 2학년에 재학중일 때 3·1운동이 일어났지요. 서울에서는 보름 가까이 만세소리가 멈추지 않았어요. 3월 5일 남대문역 앞에서 각급 학교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있었는데, 저도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대한문 앞에 있던 일제 경찰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고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15일간 구류되었다가 방면되었습니다.

  • 조화벽 서울에서 시작된 3·1 운동은 개성에서도 일어났습니다. 당시에 저는 호수돈 여학교에 다니고 있었어요. 부모님이 독실한 기독교인이셨는데, 1919년 2월 28일 기독교계 목사님들을 통해 독립선언서가 개성에 전달되었죠. 우리는 학교의 선생님들을 통해서 독립선언서를 접하고 친구들 80여 명이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쓴 뒤 동참을 서약했어요. 그런데 일제가 학교를 감시하기 시작했지 뭐예요. 그래서 3월 3일 저는 친구들과 학교 뒷문으로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헌병대 앞에서 보란 듯 태극기를 흔들며 소리높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오후가 되자 개성 읍내 중등학교 학생들과 시민들이 봇물처럼 몰려나와 나중에는 1,000명이 넘었어요. 결국 학교는 휴교령이 내려졌고, 학생들은 모두 귀향했습니다.

  • 김향화 어린 학생들이 독립운동에 나서는 것을 보면 보통 대견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기생으로 일하며 독립운동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집안이 몹시 어려워 생계를 위해 기생이 되었지요. 본명은 김순이(金順伊)이고, 김향화는 기명(妓名)입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승하하시고 엿새 뒤인 1월 27일 제가 있는 수원에서 동료 20여 명을 데리고 상경했습니다. 소복을 입고 짚신을 신은 채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얼마나 통곡을 했는지 모릅니다.

  • 이선경 전국 각지에서 운동이 전개된 것은 알았지만 개성에서, 수원에서 이런 노력을 하신 것은 처음 듣게 됩니다. 저는 그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해 3학년 무렵 비밀결사 구국민단에 참여했어요.
    저는 『대한민보(大韓民報)』 등 항일신문 배포를 맡아 활동했습니다. 가능하면 상하이로 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간호부로 독립운동을 이어가고 싶었어요. 마침내 8월 9일 상하이로 가기 위해 수원을 출발했는데 그만 서울에서 체포됐습니다. 이때 받은 고문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이후 8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고 수원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저의 노력은 여기에서 끝이 났지요.

  • 조화벽 이 성하지 못해도 그 마음마저 상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휴교령 때문에 본가인 강원도 양양으로 돌아갔는데 독립선언서를 버선 속에 숨겨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감리교회 청년부에 전달해 양양에서 3·1 운동을 하는데 보탬이 되었습니다. 여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해 가정을 꾸렸지만 사회활동을 놓지 않았어요. 원산여자기독청년회, 서울 배화여학교, 원산 진성여학교, 양양 정명학교 등에서 후진을 양성하는데 힘썼습니다.

  • 김향화 꾸준히 여러 방면에서 노력하신 것에 존경해 마지않습니다. 저는 이후 수원에 돌아와 서도홍 선배와 함께 동지들을 규합해 3월 29일 만세운동을 계획했습니다. 이날은 일제 경찰의 강압 아래 정기 성병검사가 자혜병원에서 실시되는 날이었지요. 저희는 병원 앞에 다다랐을 때 미리 준비해간 태극기를 높이 치켜올려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어요. 이날 저를 비롯해 사람들이 체포되었습니다. 두 달 동안 심문을 당하고,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지요. 이후 가석방으로 출옥 후 김우순(金祐純)으로 개명을 하고 서울에서 남은 생을 보냈습니다.

  • 이선경
    • 1902 ~ 1921
    • 포상훈격 : 애국장(2012)
    • 관련 사건 : 구국민단 사건
  • 조화벽
    • 1895 ~ 1975
    • 포상훈격 : 애족장(1990)
    • 관련 사건 : 양양읍 만세운동
  • 김향화
    • 1897 ~ 미상
    • 포상훈격: 대통령표창(2009)
    • 관련 사건 : 수원 자혜병원 앞만세운동
헌병대 앞에서 보란 듯 태극기를 흔들며
소리높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 이 글은 공훈전자사료관 및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에서 발췌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