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서는 3·1운동 당시 한국의 독립을 세계만방에 선포한 선언서입니다. 독립선언서는 대표 15명, 기독교 대표 16명, 불교 대표 2명이 함께 작성하고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들은 3월 1일 서울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독립선언식을 하고 자진해서 경찰에 잡혀갔습니다. 대표 15명의 종교는 무엇일까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3월 1일, 우리 민족은 "우리는 독립국이다!"라고 당당히 외쳤고, 이 뜨거운 함성은 나라를 이끌 정부를 만드는 힘이 되었습니다. 1919년 4월 11일, 우리 조상들은 나라의 이름을 '대한민국'이라 정하고, 왕이아닌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러한 뜻은 대한민국임시헌장 제1조 “대한민국은 로 함”이라는 문장에 담겨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항일 무장 투쟁의 선봉에 선 홍범도와 김좌진
3·1운동 이후 항일 운동에 큰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평화적인 만세 시위에도 일제가 총칼로 우리 국민들을 무참히 짓밟자 우리도 무력 시위로 맞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항일 무장 투쟁이 본격화 된 것이지요. 적은 인원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일본군에 맞서 싸워 대승을 이룬 다음의 대표적인 항일 무장 투쟁은 무엇일까요?
전투
1920년 6월 벌어진 전투입니다. 홍범도, 최진동, 안무 등이 이끄는 독립군이 일본군과 대결했습니다. 이때 만주 봉오동에서 일본군을 기습해 크게 승리하며 독립군의 사기를 북돋게 되었습니다.
전투
김좌진과 이범석이 북로(북간도) 군정서군을 이끌고, 홍범도가 이끄는 독립군 연합부대가 함께 백두산 북쪽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독립군 2,000여 명이 5,000여 명의 일본군을 무찌른 대표적인 항일무장 투쟁으로 1920년 10월에 일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