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 컬렉션
독립기념관은 약 10만 6,500여 점의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중요 자료는 보물 8점을 포함하여 등록문화재·국가지정기록물·세계기록유산 등 총 155점이다.
2024년 매호 독립기념관이 소장한 주요 자료들을 소개한다.
독립선언서, 어디까지 보았니?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독립선언서
1919년 우리 민족은 각계각층,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독립선언을 외치며 3·1운동에 참여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한인국민회가 발행한 「대한독립선언서」,
일본 동경에서 유학 중인 조선학생들이 발표한 「2·8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3·1 독립선언서」
외에도 수십 종의 독립선언서가 전국으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중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독립기념관이 소장한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된 3·1운동 관련 선언류 4종을 소개한다.

1. 평안북도 철산의 유봉영에게 우송된 「독립선언서」(1919.3.2.)[국가지정기록물 제12호] 1919년 3월 2일 연희전문학교 학생 정석해가 평안북도 철산에 있는 유봉영에게 우편으로 보낸 독립선언서 등사본이다. 이 독립선언서의 뒷면에는 서울의 3·1만세시위와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된 한국 대표단의 활동 소식, 철산에서의 봉기를 촉구하는 글이 적혀 있다. 유봉영은 정석해가 보낸 독립선언서 등사본을 광복 이후까지 간직하고 있다가 독립기념관에 기증하였다.

2. 경남 하동에 배포된 「대한독립선언서(1919.3.18.)」[국가지정기록물 제12호] 1919년 3월 18일 경남 하동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박치화를 비롯한 12인이 만든 독립선언서이다. 이 선언서는 한지에 석판으로 인쇄한 것으로, ‘조선’이라는 용어 대신 ‘대한동포’, ‘대한광복’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선언서는 길림에서 발표된 「대한독립선언서」와 「3·1독립선언서」의 주요한 내용을 참조하여 작성된 요약본이다.

3. 경남 통영의 3·1운동 격문(同胞에 檄하노라)[국가지정기록물 제12호] 3·1운동 당시 경남 통영의 격문이다. 한일 강제병합과 총독부 정책의 기만성을 고발하고, 조선 민족은 자유와 조국을 위하여 궐기하자는 내용을 싣고 있다.

4. 「대한독립여자선언서」(1919.2.)[국가지정기록물 제12호] 1919년 2월 간도에 있는 애국부인회가 우리나라 독립을 선언한 「대한독립여자선언서」이다. 이 선언서에서는 부녀자들도 독립운동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격문적 성향을 띄어, ‘독립운동은 우리 제일의 의무이며 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고 때를 놓치면 성사치 못하므로 속히 분기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