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은 지난 2월 28일, 밝은누리관에서 제105주년 3·1운동을 기념하여 미주 대한인국민회 총회관으로부터 대여된 자료 가운데 국제사회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한 자료들을 선정하여 국내 최초로 그 실물을 공개하였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들은 3·1독립선언을 전후로 개최된 국제회의 ‘제2차 뉴욕 소약국동맹회의’(4점)과 ‘파리평화회의’(3점), ‘스위스 루체른 국제사회주의자대회’(2점) 관련 자료들과 그 외교적 성과로서 결성된 ‘구미위원부’(2점) 및 ‘한국친우회’(1점) 관련 자료를 포함하여 총 12점이다.
한국독립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던 3·1운동을 시작으로 세계 각지로 나간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을 알리기 위해 얼마나 전력을 다했는지 알아보며, 국제사회에 한국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던 외교활동의 결실도 함께 살펴본다.
1. 뉴욕 소약소국민동맹회의 전단지(1918.12.14.~15) <전단지>에 적혀있는 “What will the Peace Conference do for Us?”라는 문구는 이번 모임이 평화회의가 과연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음을 명확히 알려 주고 있다. 이 자료에서 변화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식민지배의 부당함을 알리고 한국의 독립문제를 파리평화회의 안건으로 제출하기 위한 노력들을 엿볼 수 있다.
2. 뉴욕 독립단체 신한회 특별회의 결의사항 및 한국실정서 12개조(1918.11.30.) 파리평화회의 임시정부 대표로 파견된 김규식은 <비망록>과 <청원서>의 핵심내용을 요약해 미국 대통령 윌슨에게 <서한>을 보냈다. <서한>에서 김규식은 일본의 대륙침략이 궁극적으로 태평양을 지배하는데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미 태평양 전쟁을 예견하고 이를 경고하고 있어 주목된다. 일제 식민지배의 부당함을 알리고 독립에 대한 한국인의 열망을 평화회의에서 다루어 줄 것을 요구한 문서이다.
3. 스위스 루체른 국제사회주의대회의 한국 독립 결의문(1919.8.) 한국의 독립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국제적으로 처음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결의문으로, 이는 한국의 독립과 함께 국제연맹 회원국으로 받아들일 것을 촉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The International AT LUCERNE, 1919.>는 회의 직후 영국 노동당에서 제작한 소책자 형태의 보고서로 <한국 독립 결의문>을 포함해서 이번 회의에서 결의된 전체 안건을 담고 있다.
4. 구미위원부가 미주지역의 화교들을 대상으로 공채금을 모집하기 위해 발행한 공포문(1919.8.) 구미위원부에서 작성된 <공포문>에는 중국과 한국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로 중국인들도 한국의 독립을 위해 공채를 적극 구입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실제 <공문 제472호>를 보면 미주지역 화교로부터 1,315원(달러)의 의연금을 전달받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친우회의 <설립 공포문 및 설립목적 4개항> 자료는 미국사회에 한국의 실정을 알리고 독립을 위한 지원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의 독립을 돕기 위한 미국사회의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