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립운동가

죽음을 각오하고 호가장전투에서

끝까지 싸운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대원들

이달의 독립운동가

글 독립기념관 전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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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손일봉(孫一峯)                  최철호(崔鐵鎬)                    박철동(朴喆東)                     이정순(李正淳)

1912~1941                        1915~1941                          1915~1941                           1918~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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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훈장 애국장(1993)     건국훈장 애국장(1993)        건국훈장 애국장(1993)         건국훈장 애국장(1993)



80년 전 조선의용대 화북지대가 결성되다

조선의용대는 1938년 10월 중국 호남성 무한에서 성립된 군사조직으로, 중일전쟁 때 중국군을 도와 일본군을 상대로 대적 선전공작 등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전투공작 강화를 위해 주력 부대가 황하(黃河)를 건너 북상하면서 1941년 7월 하북(河北) 지역의 팔로군 근거지인 태항산에서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결성하였다. 화북지대 대원들은 일제의 패망 때까지 중국 팔로군과 연대하여 무장선전활동을 전개하는 등 한중연대를 강화하였고, 호가장전투 등을 통해 항일 의지를 널리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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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용대 성립 기념(1938. 10. 10.)(좌) / 호가장 전투지(2017)(우)                


호가장전투에서 용맹분투하여 적군을 격파하다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는 무장선전대를 3개 대로 나누어 편성하고 활동구역에 따라 무장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1941년 12월 민중대회 개최를 위해 중국 하북성 원씨현 호가장 마을에서 숙영하던 화북지대 제2대원들이 일본군 등에게 포위당하였다.

이때 제2대 분대장 손일봉과 대원 최철호·박철동·이정순은 죽음을 각오하고 후위대*에 자원하여 다른 대원들이 추격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사격하며 끝까지 싸웠다. 후위대의 헌신으로 화북지대 대원들은 포위망을 돌파할 수 있었지만, 후위대로 남은 이들은 일본군의 집중 포화 끝에 결국 전사하였다.


*  후위대 주력 부대의 뒤쪽을 보호하는 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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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장전투」, 『신천지』 1권  2호(1946)_국립중앙도서관 제공(좌) / 『조선의용대』 제42기(1942. 4. 1.)_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제공(우)            


항일전선의 귀감이 된 순국 4열사를 추도하다

손일봉·최철호·박철동·이정순 대원의 숭고한 희생은 각계에서 추도되었다. 중국 팔로군 총사령관 주덕(朱德)은 1942년 9월 중국 연안에서 거행된 추도회에서 화북지대 대원의 희생을 칭송하였고, 한국광복군 제1지대에서도 1942년 12월 순국 1주년 기념 대회를 거행하였다. 또 4열사의 헌신을 잊지 않던 조선의용군 대원들은 일제 패망 후 귀국 중 순국 4열사 묘역을 참배하여 경의를 표하였다. 이처럼 불굴의 희생정신으로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된 손일봉·최철호·박철동·이정순의 공훈을 기리어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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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혁명군 희생 동지 추도 특간」, 『해방일보』(1942. 9. 20.)(좌) / 호가장전투 순국 4열사 묘역(2017)(우)             


자유를 위해 희생된 투사들의 생명은 영원할 것이다.

그들의 전투 정신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중국과 한국 국민들의 마음속에 살아있을 것이다.

중국 팔로군 총사령관 주덕의 추도문 중에서(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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