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립운동가

노사학파 유학자들 

호남 최초로 의병을 일으키다 

기우만·박원영·김익중

이달의 독립운동가

글 독립기념관 전시부


노사학파 유학자들, 호남의병으로 활약하다

1895년 명성황후가 일제에 의해 시해당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전라도에서는 노사학파를 이끌던 기우만이 1896년 호남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다. 1907년 광무황제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 강제 해산 등 일제의 침탈이 더욱 가속화되자 호남의병은 기삼연의 주도로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라는 의병연합부대를 결성하여 조직적이고 치열한 의병항쟁을 이어나갔다.


노사학파를 이끈 기우만, 호남 최초의 의병을 일으키다

기우만은 1846년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할아버지 노사 기정진의 학문을 이어받아 노사학파를 이끌었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일어나자 기우만은 전라도 각 고을에 격문을 보내 의병을 모집하고, 1896년 음력 2월 7일 호남 최초로 장성의병을 일으켰다. 그러자 기삼연, 김익중, 박원영 등 노사학파 문인들과 담양의 고광순 등이 의병에 참여했고, 이 때 기우만은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다. 

기우만을 중심으로 한 호남의병은 음력 2월 30일 서울로 진격하고자 광주향교에 집결하여 ‘광산회맹(光山會盟)’을 추진하던 중 고종의 명으로 해산하였다. 기우만은 의병에서 물러난 후에도 상소운동을 전개하였고, 일제의 감시를 받아 여러 차례 체포되었다. 1909년 「호남의사열전(湖南義士列傳)」을 집필해 의병에 참가했던 호남 의사들의 행적을 후세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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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만의 초상화(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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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만이 작성한 상소문 「을미소」(1895)_한국고전번역원 제공


호남의병으로 순국한 박원영과 김익중

박원영은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기정진의 제자로 기우만의 장성의병에 참가하였다. 박원영은 광주향교의 재임*을 맡아 광주향교를 끝까지 지키다가 의병을 진압하러 온 진위대**에 의해 체포·처형되었다. 기우만은 박원영의 순국 이후 그를 추모하며 제문(祭文)을 지었다.

김익중은 전라남도 장성 출신으로 기정진의 제자이다. 그는 1896년 장성의병으로 활동하며 포수들을 의병에 합류하도록 권하였다. 1907년 장성에서 결성된 의병연합부대인 ‘호남창의회맹소’에서 종사(從事)라는 직책을 맡아 의병항쟁에 앞장서다가, 11월 고창읍성에서 일본군경의 습격을 받아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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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영이 순국한 광주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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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만이 남긴 「호남의사열전」 중 김익중 전기_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국모의 원수를 설욕하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탄식하는 자들은 군주의

치욕에 죽지 못하였다.

(중략)

통문이 이른 즉시 마땅히 날짜를

지정하여 각각 소관 주군에서는 의를

향한 민병을 소집하라.


1896년 음력 1월,

기우만이 호남 최초로 봉기한 장성의병의 시작을 알린 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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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병에 대한 일제의 전투기록인 『전남폭도사』(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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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병이 사용했다고 알려진 죽창, 화승총 등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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