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숨결

십승지지를 찾아서
생거 부안

십승지지를 찾아서 <BR />생거 부안

글·사진 임운석 여행작가


십승지지를 찾아서

생거 부안



전라북도에 자리한 부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곡창지대인 김제평야가 있는 김제와 바다의 보고 갯벌이 드넓게 펼쳐진 고창과 맞닿아 있다. 내륙과 바다를 모두 면하고 있으니 산물이 풍부하고 기온까지 온화하여 생거(生居), 즉 살기 좋은 곳으로 손꼽힌다.


염시초, 생거 부안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 어디냐?” 

조선 제21대 임금 영조가 암행어사 박문수에게 물었다. 박문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어염시초(물고기·소금·땔나무)가 풍부해 부모를 봉양하기 좋은 생거 부안인 줄 아뢰옵니다.” 

이런 까닭에 부안은 난리를 피해 몸을 보전할 수 있고 거주 환경이 좋은 십승지지에 이름을 올렸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부안군 보안면이다. 

보안면에는 호암굴이라 불리는 큰 동굴이 있다. 난리에도 안전할 정도로 크고 깊은 이 동굴은 외부에서 쉽게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곳에 숨어있다. 동굴을 찾아가는 길에는 잡풀과 나무가 무성하다. 하늘이 손바닥만큼 얼굴을 내밀면 그제야 울창한 대나무 숲이 나오고 그 뒤에 동굴이 있다. 동굴 안에서 피리 소리가 바람에 실려 온다. 전주에서 시조 소리를 공부하다가 부안에 귀촌한 김용구 선생이 피리를 연주 중이다. 그는 전북 무형문화재 34호 이수자로 시조와 가사를 수련하고 있다. 

“여기 사람들은 어질고 착해요. 살기 좋으니까 나 같은 사람도 부안에 자리를 잡았겠죠. 흔히 전주를 소리의 고장이라고 하는데 부안도 그에 못지않아요. 부안은 예로부터 해산물이 풍부하고 땔나무도 많았다고 하잖아요. 또 소금까지 생산됐으니 먹고사는 걱정은 없는 곳이죠.”

마을 주민의 말에 따르면 마을에 110세가 넘은 할머니가 계신다고 한다.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주민들의 입을 통해 할머니의 장수 비결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 쌀로 밥을 지으면 보슬보슬하고 윤기가 흐르고 맛이 좋아요. 밥만 먹어도 고소하다니까요. 해풍을 맞고 자라서 병충해 발생이 적고 영양도 풍부해요. 특히 잡곡은 섬유소가 풍부해요. 영양소는 껍질에 죄다 모여 있잖아요. 그래서 껍질을 완전히 벗기지 않고 먹어요. 먹을 때 좀 깔끄럽기는 하지만 자꾸 먹다 보면 익숙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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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굴 앞에 자리한 우동제



백년을 내다본 시대의 학자, 반계 유형원

가까운 곳에 실학의 거목 반계 유형원(1622~1673) 유적지가 있다. 유형원의 아버지는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그가 일찌감치 출세를 포기한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14살에 겪은 병자호란(1636, 인조 14)도 약소국의 설움을 뼈저리게 체험하는 시간이었을 게다. 그는 신세 한탄에 머물지 않고 은둔 개혁자의 삶을 선택했다. 우반동에 정착한 그는 수많은 책을 읽으며 이상 국가의 모델을 그려나갔다. 성리학은 물론 정치, 경제, 역사, 지리, 병법, 문학 등 어느 것 하나 섭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19년의 긴 집필 끝에 『반계수록(磻溪隧錄)』을 세상에 내놓았다. 국가 운영과 개혁에 대한 견해를 담은 책으로써 시대를 앞서 내다본 유형원의 역작이다. 하지만 생존할 당시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다가 성호 이익과 그의 제자 순암 안정복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1750년 영조(1694~1776)가 이 책을 간행하도록 허락했다. 

이후 정조(1752~1800)는 유형원의 개혁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 결과물이 1796년에 축조된 수원화성이다. 『반계수록』 발표 126년 만의 일이다. 현재 보안면 우반동에는 유형원이 후학을 가르쳤던 반계서당(전라북도 기념물 제22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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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반계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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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계서당과 넓은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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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소금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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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 미네랄이 풍부한 곰소염전 천일염



자연과 땀의 결정체, 소금

30번 국도를 따라 채석강으로 향한다. 그 길목에 곰소항이 있다. 전라북도에서 유일하게 천일염을 생산하는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천일염이 아닌 바닷물을 끓여 만드는 ‘화염(火鹽)’을 생산했다고 한다. 지금의 염전이 생긴 것은 1942년 일제가 부안지역을 군항(軍港)으로 만들고 제방과 도로를 건설하면서부터다. 이때 염전이 만들어졌으니까 70년이 지났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 빛바랜 소금창고가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염전을 지키고 있다. 날이 뜨거워서 그런지 염전에는 사람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다. 

“목이 타들어 가도 우리는 한여름 뙤약볕이 고마워.” 소금창고에서 작업 중인 할아버지의 말이다. 그는 대를 이어 소금 아비를 하고 있단다. 오랜 세월 동안 해왔던 일이라 그런지 삽질이 젊은이 못지않다. 힘은 부족할지 몰라도 소금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 보인다. 그의 몸놀림은 춤을 추듯 일정한 리듬을 타고 있었다. 

“소금이 절로 나는 게 아닙니다. 햇볕·바람·사람 땀 냄새가 섞여야 소금꽃(소금 결정체)이 펴요. 비라도 와 봐요. 소금꽃이 다 녹아버리지. 바닷물을 두 번에 나눠서 증발지로 보내고 마지막으로 새벽부터 온종일 햇볕에 졸여져야 저녁에 하얀 소금꽃이 피는 거예요.” 

정성 어린 땀과 시간이 모여 탄생한 천일염은 건강에 좋지 않은 염화나트륨은 낮지만, 칼슘·마그네슘·칼륨 등 천연 미네랄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곰소항 인근에는 젓갈 전문점과 꽃게장 전문 맛집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곰소항의 풍부한 해산물과 곰소염전이 만든 합작품인 셈이다. 꽃게장에 밥을 비벼 먹으면 혀끝에 단맛과 고소한 맛이 오랫동안 배어난다. 미네랄이 풍부한 곰소 천일염이 햇볕과 바람에 졸여진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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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창고에서 작업 중인 박정길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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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아미노산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꽃게장



부안 최고의 비경, 30번 국도에 이어져

요즘은 사람들이 부안을 찾는 이유는 따로 있다. 30번 국도를 따라 변산반도의 비경을 보기 위해서다. 곰소항을 지나면 마동방조제와 모항갯벌해변이 이어지고, 그 길목에 서해안 3대 낙조로 꼽히는 솔섬 낙조가 있다. 낙조 감상은 전북학생해양수련원 바다에서 가능하다. 솔섬은 소나무 몇 그루가 자라는 작은 섬이다. 

부안 최고의 절경은 역시 채석강이다. 채석강은 중국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졌다는 채석강과 풍광이 닮아서 그리 불린다. 책 수만 권을 쌓아 놓은 것 같은 채석강은 세월이 켜켜이 쌓인 퇴적암 지대다. 역시 소문난 잔치에는 반드시 먹을 게 많다. 살기 좋은 부안은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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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3대 낙조로 꼽히는 솔섬 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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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의 명소 채석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