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독립운동

2020년,
기념하고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

2020년,<BR />기념하고 기억해야 할<BR />독립운동


글 이계형 국민대학교 특임교수


2020년,

기념하고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



1945년 우리 민족은 광복을 맞았지만, 독립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미완으로 남은 사건, 해결되지 못한 문제, 기억해야만 하는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은 독립운동은 독립운동사를 과거에 머문 역사가 아닌 현재의 문제로 다루며, 오늘도 신문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독립운동 및 일제강점 이슈를 소개한다.


10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자세

2019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었다. 이를 맞아 정부 차원에서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여러 행사를 총괄 추진하였고, 지자체 혹은 여러 기관에서도 기념행사나 특별전을 개최하며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하였다. 또 관련한 사적지에 기념물·조형물 등이 새롭게 조성되기도 하였다. 3·1운동은 일제 식민 통치 10년 만에 전 인민이 한마음으로 항거한 독립운동이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현재 대한민국 법통성의 시작이 되었다는 점 때문에 그러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 아쉬운 부분도 남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100년’은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주기로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다만 ‘100주년’ 행사 중에서 잘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있을 것이다. 전자는 활성화해야 하고 후자는 채워 넣어야 한다. 앞으로 독립운동과 관련한 100주년 행사가 줄을 이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과 같이 정부가 적극 나설 정도로 규모가 큰 정도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어쨌든 큰 행사를 치른 만큼 명암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것이고 이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결 방안을 찾아가는 것도 필요하다 생각한다. 

우선적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하에 기획부터 시행까지 이뤄진 사업이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100주년 사업의 목적이 모든 국민이 독립정신을 일깨우고 기리는데 있다는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지자체의 행사는 규모가 확대되었을 뿐, 새로운 부분이 적었다. 이를 지역의 화합 차원으로 승화시켰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 건설된 신도시에는 고향이 다른 수많은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니 소속감이나 지역공동체 의식이 적다. 이를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이 자랑스러운 지역사이다. 지역사를 어떻게 기리고 보존하며, 자랑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지역공동체는 더 단단해진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줄을 이었을 것이다. 또한, 비슷한 지자체 행사에 차별화가 될 수도 있다.

두 번째로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가려 100주년을 맞이한 다른 독립운동이 소외된 경우도 있었다. 우선 3·1운동 이후 만주에는 수많은 독립군이 조직되어 활동했지만, 이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2·8독립선언, 신흥무관학교 개교, 민족대표 양한묵 순국, 강우규 의거, 안중근 의거 110주년 행사도 상대적으로 관심을 얻지 못했다. 


돌아오는 100주년, 어떻게 기념하고 기억할 것인가

2020년을 맞아 올해 기념하고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 이야기를 통해 앞선 문제점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봉오동(1920.06.)과 청산리전투(1920.10.)가 100주년을 맞이한다. 3·1운동 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50여 개의 독립군이 연합해 국내진공작전을 벌이는가 하면, 임시정부가 선포한 ‘독립전쟁의 해’를 맞아 독립군이 정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일에 대해서 그 역사적 가치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다만 예년처럼 두 영웅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행사나 사업이 진행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홍범도와 김좌진은 알고 있지만, 봉오동전투에서 봉오동을 일군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여러 독립군 단체가 연합하여 승리한 전투이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이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봉오동·청산리전투 전후 일제가 보복 차원에서 1921년 4월까지 만주 한인 마을을 방화·약탈하고 한인들을 학살한 사건에 대해서 아는 이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1920년 10월과 11월, 두 달 사이에만 약 3,600여 명이 학살당했고 150여 명이 검거되었으며 가옥 3,500여 채, 학교 60여 개소, 교회 20여 개소 및 양곡 6만여 석이 소각되었음에도 말이다. 이를 ‘간도참변’, ‘간도대학살’, ‘경신참변’이라 한다.

봉오동·청산리전투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정부 예산을 받아 많은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의미 있는 행사가 될 거라 기대하면서도 예전과 같이 특정인을 기리는 행사를 지양하기를 바란다. 다양한 사업을 통해 두 전투의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독립군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다가 희생당한 이들도 기억해야 한다. 개별 기념사업회 차원에서 사업을 진행하기 보다는 통합하여 공동 운영하는 방안도 고려해봄직하다. 

이외에도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중국과의 관계로 봉오동과 청산리 전적지에 접근조차 곤란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예전 기념 시설도 방치되어 있다. 중국과의 외교적 채널을 통해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이다. 아울러 ‘간도참변’에서 희생당한 이들의 추모비 건립도 추진했으면 한다.

2020년에 ‘100년’을 기념하고 기억해야 할 것들이 더 있다. 인물로는 최재형이 있다. 그는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활동하다가 일본군의 ‘4월참변’에 총살로 희생당했다. 유관순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고, 사이토 총독을 폭살하려던 강우규는 순국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의병장 채응언 의진에서 활동했던 안광조는 평양형무소에서 사형 순국했다. 군자금 모금·친일관리 처단 등의 활동을 펼친 대한독립단 특파대장 이명서는 전사 순국했다. 『동아일보』 장덕준 기자는 만주의 훈춘사건 취재 중 간도 용정에서 일본 경찰에 피살되었다. 이들을 기리는 데는 업적의 크고 작음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의 모티브가 되었던 철혈광복단의 ‘15만 원 탈취 사건’도 어느덧 100년이 되었다.

100년이 된 단체, 기관도 있다. 대한체육회(옛 조선체육회)·대한정구협회(옛 조선정구협회)의 설립이 그러하다. 『조선일보』·『동아일보』 등도 1920년에 창간되어 일제강점기에 민족지로서 역할했다. 3·1운동의 실패로 인한 실망과 궁핍한 삶에 불안 등 퇴폐적인 상황 속에서 탄생한 『폐허』와 민족의식 고취에 역점을 둔 대표적인 종합잡지 『개벽』의 창간도 100년이 되었다.

어느 사건이나 단체이든지 ‘100년’이 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역사이다. 다만 기려야 할 것인지 반성해야 할 것인지는 우리의 판단이고 몫일 것이다. 더불어 2020년은 일제에 의해 식민지가 된 지 110년이 되는 해이다.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왜, 어떻게 그리되었는지에 대한 충분한 반성과 질책, 비판이 있어야 한다. 이와 달리 독립운동과 관련한 인물, 사건 단체 등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련의 과정은 다시 돌아오는 100년 후의 중요한 역사가 될 것이다. 독립운동사는 이 나라가 존재하는 한 교훈이 되어야 하고 독립운동가들은 영원히 기려야 할 선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폈지만 올해에는 감옥에서, 사형장에서, 전장에서 숨을 거둔 독립운동가의 순국 100년이 많다. 이들 가운데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거나 기념사업회가 없어서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기려지지 못하는 분들도 있다. 2019년 의미 있게 100주년을 치른 경험을 바탕으로 잊힌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어떻게 기념하고 기억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2020년 올 한 해가 그 시험대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 우리가 독립된 나라에 살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숭고했던 100년 전 희생의 역사 덕분이며, 돌아올 100년 후 내 후손이 살아갈 나라가 어떤 나라일지는 지금 우리의 몫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