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동영상보기

독립기념관의 동영상보기입니다. 닫기 버튼을 누르시면 팝업창이 닫힙니다.

독립기념관의 동영상보기입니다. 닫기 버튼을 누르시면 팝업창이 닫힙니다.

자막내용

제5전시관은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일제에 대항하여 싸웠던 내용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만주를 중심으로 연해주, 미주 등지에서 전개된 무장항일 투쟁자료, 한국광복군과 의열 투쟁에 관련된 자료들과 광복군 훈련장면, 청산리 전투현장 재연 장면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존에서는 광복을 위한 항일 무장투쟁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무명 독립군상으로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만주와 연해주의 산간오지에서 일본군과 싸웠던 수많은 이름없는 독립군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게 됩니다. 1919년을 전후하여 민족 운동가들은 중국 연해주 등지에서 많은 독립운동 단체와 독립군단을 조직해 일본군을 상대로 무장항일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192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일제를 몰아내기 위한 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습니다. 특히, 만주지역에서는 50여 개에 이르는 각종 독립운동단체들이 생겨나 각기 나름대로 독립운동의 방향을 실천에 옮기며 일제를 몰아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봉오동 전투의 눈부신 승리, 1920년 10월 21일부터 약 10여일 동안 지속된 청산리대첩의 신화, 1933년 대전자령 전투의 승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존에서는 일제의 집요한 탄압을 확인할 수 있는 간도참변과 자유시참변이 전시되어 있어 일제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한국인들과 일제의 끊임없는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독립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대첩의 패배에 놀란 일제가 탄압의 강도를 점차 높여감에 따라 이에 대응하여 한인 독립운동 진영에서는 국내외에 산재한 모든 독립운동 단체를 하나로 통합하자는 민족유일당 운동이 일어났고, 그 결과 새로운 독립운동 통합체로 조선혁명당과 한국독립당을 결성하고 무장 단체인 한국독립군을 편성하여 일제에 항거하는 등 독립의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세 번째 존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를 응징하기 위해 단독 혹은 단체를 결성해 의거를 일으켰던 의사들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제의 한국 침략과 식민통치 울분을 느낀 의열사들은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의거를 일으켰습니다. 서상한, 박열, 강우규, 김상옥, 나석주, 이봉창, 윤봉길 등 수많은 의열사들은 침략의 원흉이나 그 기관을 향해 포탄을 던져 일제에게는 부당한 한국침략에 대해 경종을 울려고 동포에게는 조국 독립의 의지를 일깨웠습니다. 특히 김원봉을 단장으로 한 의열단과 김구를 단장으로 하는 한인 애국단은 치밀한 계획하에 많은 의거를 수행한 대표적인 의열단체였습니다. 이들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한 의열사들의 투쟁은 우리 민족의 저항 정신과 민족의 얼이 살아 있음을 만천하에 보여준 항쟁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네 번째 존에서는 한국광복군의 창설과 한국광복군의 편재 및 훈련, 그리고 한국광복군의 활동을 알 수 있으며 맹호군 창설을 통한 미주지역 한인들의 조국 독립에 대한 열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광복군은 인도 버마 전선에서 영국군과 함께 인파엘 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에 참가했고 1944년 5월부터는 미군 전략첩보국과 함께 국내 진입 작전을 위한 특수 훈련까지 수려하고 1945년 8월에는 국내 정진대를 편성하였습니다. 비록 일제의 항복으로 국내 진공 작전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국내 정진대는 미군 18명과 함께 여의도 비행장까지 들어왔으며 광복 후 중국내 한인들을 조국으로 귀환시키는 임무도 수행하였습니다. 다섯 번째 존에서는 조국 광복을 위해 산화한 의사들의 모습을 통해 다시 한 번 조국과 민족의 소중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배는 산산조각이 나고 몸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혼과 정열은 한 방울의 피, 한 점의 살이라도 내 사랑하는 조국 땅에 뿌려주고 던져 줄 것을 나는 확신한다.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