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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기념”자료 기증식 및 특별 강연회 개최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기념”자료 기증식 및 특별 강연회 개최
- 서거 후 78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홍범도 장군 생전 영상 공개, 홍범도 일지 등 16점 -


< 자료기증 및 특별 강연회 행사 개요 >

- 일 시 : 2021. 8. 17.(화) 오전 10시
- 장 소 : 독립기념관 MR독립영상관 내 4DX관
- 공개자료 :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 개회식(1922년 1월) 영상, 홍범도 일지,
대한독립군 유고문(大韓獨立軍諭告文), 봉오동전투상보(鳳梧洞戰鬪詳報),
홍범도 사진(1912년 촬영본, 1922년 촬영본 각 1점) 등 (총 16점)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은 2021년 8월 17일(화)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기념 자료기증 및 특별 강연회’를 개최하고, 홍범도 장군의 생전 모습이 담긴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 개막식에 참석한 영상 자료와 독립기념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홍범도 장군 관련 자료들을 소개한다.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 개막식 영상은 홍범도 장군의 생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재까지 유일한 자료이다. 독립기념관은 이번 행사에서 ‘홍범도 일지’와 ‘봉오동전투상보’, 1912년과 1922년에 촬영된 홍범도 사진 2점 등 소장 중인 홍범도 장군 관련 자료 15점을 함께 소개하며, 영상 자료를 기증한 반병률(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의 특별 강연을 진행한다.

이번 행사는 1943년 카자흐스탄에서 서거한 이후 7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되는 것이다. 이번에 기증받은 영상자료 상연 행사는 올해 8월 15일 정식 개관한 독립기념관 MR독립영상관 내 4DX관에서 진행된다. 독립기념관은 향후 해당 자료를 전시 및 연구·교육 등에 활용하여 홍범도의 활동과 한국독립운동의 역사를 널리 알리는데 활용할 것이다.


<주요 자료 설명>

1) 반병률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교수 기증 자료


□ 1922년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 개막식 영상
1922년 1월 21일부터 2월 2일까지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국제공산당(코민테른) 국제대회인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 개막식을 촬영한 영상 자료이다. 해당 대회는 1921년 11월부터 1922년 2월까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정세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워싱턴 회의에 맞서 국제공산당이 지휘한 원동의 식민지·반식민지 혁명자들의 대회이며, 한국과 중국, 일본, 몽골 등지에서 총 148명의 대표가 참석했다. 홍범도(洪範圖, 1868~1943) 장군과 최진동(崔振東, 1882~1945) 장군을 비롯하여 김규식(金奎植, 1881~1950)과 여운형(呂運亨, 1885~1947), 현순(玄楯, 1880~1968), 김원경(金元慶, 1898~1981), 권애라(權愛羅, 1897~1973) 등의 독립운동가들은 아시아 식민지 대표들과 독립투쟁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해당 대회에 참석했다.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는 본래 1921년 11월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여러 차례 연기됐다가 이듬해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 해당 영상자료는 홍범도 장군의 생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재까지 유일한 자료임.
- 해당 영상자료는 홍범도 장군 뿐만 아니라, 여운형 선생과 현순 목사, 김규식, 김원경, 권애라 선생 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음
- 해당 영상자료는 반병률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지난 2018년 7월 러시아 국립 사진·영상물 보관소에서 발굴하여 공개한 자료로, 7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을 기념하여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자료임

2) 독립기념관 소장 자료

□ 홍범도 사진(1912년 촬영본, 1922년 촬영본)
1922년 1월 21일부터 2월 2일까지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에 참석한 홍범도 장군을 촬영한 사진이다. 해당 사진이 촬영될 당시 홍범도 장군의 나이는 55세이다. 홍범도는 “1921년 12월 11일에 이르쿠츠크에서 떠나 모스크바에 당진하여 객정(여관, 모스크바 럭스 호텔)에서 개회식을 열고 전기를 이용해서 사진 찍고”라고 기록하며, 사진을 촬영했던 당시 상황을 「홍범도 일지」에 회상했다.
사진 속 홍범도는 소비에트 러시아 적위군 군복을 입고 있으며, 허리춤에는 레닌으로부터 받은 권총을 권총집에 넣고 잘 보이도록 우측 허리춤에 돌려놓은 모습이 확인된다. 사진 하단에는 홍범도의 이름을 러시아어(ХОН ПЕМ-ДО)로 기재해 둔 것이 확인된다.
- 해당 자료는 이인섭 선생의 외손주인 세르게이 솔로보치코브 선생이 2016년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자료임

□ 봉오동전투상보
1920년 봉오동전투에 참가했던 일본군 장교 야스카와(安川) 소좌가 작성한 봉오동전투와 삼둔자전투에 대한 보고서이다. 해당 자료는 봉오동전투가 발생한 1920년 6월 7일에서 조선군사령부의 공식 발표가 있었던 6월 19일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봉오동전투상보」는 일본군의 입장에서 1920년 봉오동전투 당시 독립군과 일본군의 상태, 전투지역의 기후와 지형 정보, 전투의 진행 과정, 병참과 통신 수단, 전투에 대한 소견 등을 구체적으로 작성한 보고서이다.

□ 홍범도 일지
홍범도 장군의 출생부터 무장항일투쟁, 중앙아시아에서 보낸 말년까지의 삶과 활동을 시간 순으로 기록한 자료이다. 「홍범도 일지」는 ‘일기’로 알려져 있지만, ‘일기’ 라기 보다는 자전적 ‘약전’에 가까운 자료이다. 홍범도가 활동했던 의병부대와 독립군 부대의 포고문이나 경고문, 사령장 등을 제외하면 홍범도가 직접 쓴 글은 「홍범도 일지」와 1928년에 작성한 「리력서」, 1941년 11월 7일 ‘레닌의긔치’ 신문에 기고한 「원쑤를 갚다」 기사가 전부이기 때문에, 「홍범도 일지」는 홍범도의 독립운동과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해당 자료는 여러 필사본(김세일본, 이인섭본, 이함덕본) 가운데 연극 <홍범도>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작성했던 「홍범도 일지」 원본을 카자흐스탄 고려극장 당 책임비서 김진이 고려극장 배우 이함덕에게 지시하여 1958년 4월 16일에 필사를 완료한 필사한 ‘이함덕본’이다. 한국에 처음 「홍범도 일지」의 존재를 알린 김세일본과 이인섭본은 이를 다시 옮겨 쓴 것이다.
- 해당 자료는 고려인 작가 김세일(1912~2001) 선생이 1996년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자료임

□ 김진이 이인섭에게 보낸 편지(1958년 4월 17일)
1958년 4월 17일 소련 카자흐스탄 공화국 고려극장 당 책임비서 김진(1913~1966)이 이인섭(李仁燮, 1888~1982) 선생에게 「홍범도 일지」 필사본과 사진을 보내기 위해 함께 보낸 편지이다.
이인섭은 1958년 3월 14일 김진에게 자신이 ‘조선해방운동에 참여하던 비밀사업자들 회상기와 이전 의병들, 독립군들의 회상기’를 수집하고 있는 사실을 알리는 한편, 고려극장의 극작가 태장춘이 희곡 <홍범도>를 제작했던 사실을 언급하며 홍범도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다. 김진은 이에 대해 홍범도가 연해주의 한카이 구역에 머물 당시 작성한 ‘의병운동에 대한 일기’, 즉 「홍범도 일지」의 존재를 확인해 주고, 일지를 보내줄 것임을 약속했다. 그리고 김진은 1개월여 만인 1958년 4월 17일 해당 편지와 함께 이함덕이 필사한 「홍범도 일지」와 「홍범도 사진」을 이인섭에게 전해주었다. 해당 편지는 「홍범도 일지」에 대한 소장 경위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해당 자료는 이인섭 선생의 아들인 이 아나톨리 선생이 2009년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자료임

□ 이인섭이 작성한 「조선인민의 전설적 영웅 홍범도장군을 추억하면서」
이인섭이 홍범도 장군의 생애를 「홍범도 일지」와 여러 항일혁명운동 참가자들의 회상기 등의 자료들을 기반으로 소설 형식으로 집필한 자료이다. 해당 자료는 총 20장, 341매의 분량으로 이인섭이 1951년부터 1958년까지 집필한 것으로, 홍범도 장군의 출생부터 무장항일투쟁, 중앙아시아에서 보낸 말년까지의 삶과 활동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해당 자료는 1권의 내용으로 홍범도의 출생을 다룬 제1장부터 의병전쟁 당시 만주로 망명한 시기의 활동을 다룬 제10장 ‘압록강은 건너선 홍범도’까지만 기재되어 있다.
이인섭은 1951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홍범도 장군의 분묘 수리사업에 참여한 과정과 참여자들을 소개하고, 홍범도와 함께 활동했던 박성태, 심상원의 제의에 따라 ‘홍범도의 전기나 정치역사소설을 기록하여 후진들에게 전하기 위해 회상기들을 수집하기에 착수했다’라고 해당 자료를 집필하게 된 동기를 밝히고 있다. 해당 자료는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종학과 김재구, 김희영, 김승빈 등 홍범도와 함께 무장항일투쟁을 전개했던 이들의 회상기를 기반으로 작성되어 홍범도의 삶과 독립운동, 사후 고려인사회에서 홍범도의 역사적 위상과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성격을 갖고 있다.
- 해당 자료는 이인섭 선생의 아들인 이 아나톨리 선생이 2009년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자료임


□ 이인섭 사진(1918년 촬영본)
1918년에 촬영된 이인섭의 사진이다. 이인섭은 평안남도 맹산군(孟山郡) 일대에서 1907년부터 1911년까지 김관수의진에 참가해 의병부대장 서기로 활동했고, 1910년에는 간민회 지방회 설립에 참여했다. 1913년 러시아 지역으로 이주한 이후, 1915년 연해주에서 권업신문 발간에 참여했고, 1918년 4월에는 하바롭스크에서 창립된 한인사회당 제1차 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임되어 활동했다. 이후 1951년부터 중앙아시아에서 소련과 인근 국가 등에 거주하는 연해주,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로부터 회상기와 개인 인물 사진 등을 수집하며 홍범도를 비롯한 한국독립운동 역사를 복원하는 데 힘썼다. 사진 하단에 한글로 ‘한인사회당 중앙위원회 위원 1918년 리인섭’이라는 메모가 기재되어 있는 사실이 확인된다.
- 해당 자료는 이인섭 선생의 외손주인 세르게이 솔로보치코브 선생이 2016년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자료임

□ 이인섭과 ‘레닌기치’ 신문사 사원들과의 단체사진)
애국지사 이인섭 선생이 1957년 9월 3일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소재한 ‘레닌기치’ 신문사에 방문했을 당시 신문사 직원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1923년 1월에 창간된 ‘선봉’을 전신으로 하는 ‘레닌기치’는 소련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이전된 1937년 5월 창간되어 1991년 ‘고려일보’로 제호를 개칭할 때까지 발행된 소련 지역에서 발간된 유일한 한글신문이다. ‘레닌기치’는 1941년 11월 7일 홍범도 장군의 기사를 게재한 바 있고, 고려인 작가 김세일은 1968년부터 1969년까지 총 124회에 걸쳐 「소설 홍범도」를 게재하기도 했다.
이인섭과 ‘레닌기치’ 신문사 사원들은 1951년 홍범도 장군 서거 8주년 당시 홍범도 장군 분묘 수리사업에 참여했다. 해당 사진은 1957년 9월 3일 이인섭 선생이 ‘레닌기치’ 신문사를 방문했을 당시 사원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
- 해당 자료는 이인섭 선생의 아들인 이 아나톨리 선생이 2009년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자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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