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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 의거 8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연도 : 2012 전시 날짜 : 04.27~06.10 전시 장소 : 특별기획전시실Ⅱ (제7전시관 내) 작성자 : 홍보문화부 작성일 : 2013-08-14 조회수 : 755

.   특별기획전을 개최하며

특별기획전을 개최하며


지금으로부터 80년 전,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적진에 달려가 폭탄을 던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윤봉길尹奉吉 의사입니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있었던 일제의 상하이침략 승리 축하식장에 폭탄을 던졌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용감한 의거는 바로 독립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중국과 함께 일제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고, 전 세계에 우리의 독립의지를 알릴 수 있었습니다.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고 민족을 위해 큰 결심을 했던 윤봉길 의사의 삶과 독립운동,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소개.   특별기획전을 개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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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전을 개최하며


지금으로부터 80년 전,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적진에 달려가 폭탄을 던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윤봉길尹奉吉 의사입니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있었던 일제의 상하이침략 승리 축하식장에 폭탄을 던졌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용감한 의거는 바로 독립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중국과 함께 일제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고, 전 세계에 우리의 독립의지를 알릴 수 있었습니다.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고 민족을 위해 큰 결심을 했던 윤봉길 의사의 삶과 독립운동,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특별기획전 메인 포스터

< 윤봉길 의사 의거 8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포스터 >

1부.   조국의 위기에 눈을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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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조국의 위기에 눈을 뜨다


1908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난 윤봉길 의사는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로 빼앗고 우리 민족을 탄압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한학을 배우고 신학문을 익히며 애국심을 키워가던 윤의사는 1926년 야학당을 세웠습니다. 야학당 교재로『농민독본農民讀本』을 직접 만들고, 농촌의 부흥을 위해 부흥원復興院과 월진회月進會를 세워 농민조합 활동과 학예회 활동을 했습니다.



농민독본

ㅇ 『농민독본 農民讀本』 제2권 : 농민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고 나라사랑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윤봉길 의사가 직접 만든 책의 일부입니다.


저한당

ㅇ 윤봉길 의사가 자라난 집 저한당


월진회기

ㅇ 월진회기 : 윤봉길 의사가 만든 농민운동단체 월진회를 상징하는 깃발입니다.



※ 윤봉길 의사에게 물어볼까요 - 왜 농촌운동을 하셨나요?

윤봉길 의사에게 물어볼까요 - 왜 농촌운동을 하셨나요?

- 우리 조선은 농민의 나라입니다. ... 우리 조선에서 농민이 이처럼 가난하다는 것은 결국 전 조선이 못살게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힘을 농민에게로 돌려야 합니다. (윤봉길 의사가 쓴 책『농민독본』 3권 중 '농민')

2부.   혼란한 세계, 위기의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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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한 세계, 위기의 조국


- 대한제국을 강탈한 일제는 무력을 앞세워 만주에 이어 상하이上海까지 쳐들어갔습니다. 만주의 독립군이 피해를 입고, 상하이에 세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힘이 약해졌습니다. 게다가 일제가 ‘만보산 사건’을 계기로 중국과 한국 사이를 이간질시켜서 중국에서의 독립운동이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ㅇ 1919년 세워진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만주를 침략하는 일본군

ㅇ 만주를 침략하는 일본군

불타는 상하이의 모습

ㅇ 일제의 공격으로 불타는 상하이의 모습


※ 더 알고싶어요 - ‘만보산 사건’ 이란?

만보산사건 삽화

- 일제는 한인을 만주 지방으로 이사시켜 농지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인과 중국인 사이의 작은 싸움을 일어나자 일제가 중간에서 이를 크게 부풀려 두 나라간 사이를 악화시킨 사건입니다.

3부.   장부출가생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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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장부출가생불환


- 일제의 감시로 농촌운동에 한계를 느낀 윤봉길 의사는 1930년 고향을 떠나 중국으로 갔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에서 머물다 1932년 1월 이봉창 의사의 의거 소식을 듣고 김구 선생을 찾아가 의열투쟁을 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4월에 열리는 일본의 상하이전투 승리 축하기념식장에서 의거를 결행하기로 결심하고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에 가입했습니다.

윤봉길 의사가 고향을 떠나며 남긴 유묵

ㅇ 윤봉길 의사가 고향을 떠나며 남긴 유묵 : '사내대장부는 집을 나가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독립을 위한 의사의 굳은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봉창 의사 사진

ㅇ 일본 국왕에게 폭탄을 던진 한인애국단원 이봉창 의사 : 윤봉길 의사는 1931년 1월 8일에 일어난 이봉창 의사의 의거 소식을 듣고 한인애국단의 가입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윤봉길 의사가 거사 전 남긴 자필 이력서 사진

ㅇ 윤봉길 의사가 거사 전 남긴 자필 이력서

윤봉길 의사의 한인애국단 가입선서식 사진

ㅇ 윤봉길 의사의 한인애국단 가입선서식


※ 나도 한인애국단!

- 윤봉길 의사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하며 김구 선생과 찍은 사진이 포토존으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윤봉길 의사와 함께 사진을 찍어보세요.

4부.   폭탄에 독립의 꿈을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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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의거 직후 일본경찰에 붙잡혀가는 윤봉길 의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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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폭탄에 독립의 꿈을 싣고


1932년 4월 29일, 아침 일찍 김구와 식사를 끝내고 거사에 사용할 두 개의 폭탄을 받은 윤봉길 의사는 의거 현장으로 가는 길에 새로 산 시계를 김구 선생과 맞바꾸고 홍커우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일본의 승전 축하식과 일왕 생일 축하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일본국가가 끝나갈 무렵, 윤의사는 무대를 향해 뛰어나가 물통 폭탄을 던졌습니다. 이 폭탄으로 한국과 중국 침략에 앞장선 일본인들이 죽거나 다쳤고, 윤의사는 일본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의거 직전 무대에 늘어선 일제 장군과 일본인 대표

ㅇ 의거 직전 무대에 늘어선 일제 장군과 일본인 대표

폭탄을 던진 후 무대의 모습

ㅇ 폭탄을 던진 후 무대의 모습

의거 직후 일본경찰에 붙잡혀가는 윤봉길 의사

ㅇ 의거 직후 일본경찰에 붙잡혀가는 윤봉길 의사

윤봉길 의사와 김구 선생이 교환한 시계

ㅇ 윤봉길 의사와 김구 선생이 교환한 시계


※ 더 알고싶어요 - 4월 29일의 행사는 일제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열병식 사진

일제가 중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상하이 침략전쟁에서 승리한 것를 축하하는 날과 동시에 일본 왕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기념하는 행사였습니다. 일제로서는 중요한 날이었기에 크게 펼쳐졌고, 상하이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도 많이 초대되었습니다.

5부.   한중 항일투쟁의 발판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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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한중 항일투쟁의 발판이 되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 소식을 들은 중국인들은 통쾌해하며 한국인에 고마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김구와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는 힘을 합쳐 일제에 맞서 싸울 것을 다짐했지요. 한인학생들이 중국의 군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중국 주요 인사들과 동포들이 임시정부를 지원하게 되어 중국에서 독립운동이 더욱 활발해졌답니다.


한인학생 특별반을 만들었던 중국 낙양군관학교의 현재 모습

ㅇ 한인학생 특별반을 만들었던 중국 낙양군관학교의 현재 모습


윤봉길 의사 의거 후 중국인들의 항일운동시위

ㅇ 윤봉길 의사 의거 후 중국인들의 항일운동시위


도왜실기

ㅇ 『도왜실기屠倭實記』 : 윤봉길 의사의 의거 등 한인애국단의 독립운동을 중국에 널리 알리고자 한인애국단에서 중국어로 출판한 책입니다.


※ 더 알고싶어요 - 중국은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어떻게 얘기했을까?

한인학생 특별반을 만들었던 중국 낙양군관학교의 현재 모습

중국 국민당 총재 장제스蔣介石는 ‘중국군 30만 명이 해내지 못한 일을 조선 청년 혼자 해냈다’며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높이 평가하고 한인의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6부.   세계를 뒤흔든 상하이의 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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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세계를 뒤흔든 상하이의 포성


중국을 침략하려 했던 일제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사기가 꺾여 욕심을 포기하고 전쟁을 멈추는 협정을 중국과 맺었습니다. 이 의거는 세계의 기자들이 많이 와있던 행사장에서 일으킴으로써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일제의 부당한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게 되었고,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국 침략을 멈추는 협정을 맺는 일본

ㅇ 중국 침략을 멈추는 협정을 맺는 일본(1932.5.5)


중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보도한 해외 신문

ㅇ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보도한 세계의 신문들


무라이 대례복

ㅇ 무라이 대례복 : 일본 주상하이 총영사 무라이村井가 의거 당시 입었던 옷입니다. 의거를 기억하고 두 나라의 평화를 위해 후손이 독립기념관에 기증했습니다.


※ 윤봉길 의사에게 물어볼까요 - 어떤 생각으로 의거를 하셨나요?

윤봉길 의사에게 물어볼까요

이번 사건과 같은 것도 독립에는 당장 직접 효과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오직 약속하는 것은 이로 인해서 조선인을 깨우치고, 다시 세계로 하여금 조선의 존재를 명료히 알게 하는데 있다.
현재 세계지도에 '조선'은 일본과 같은 색으로 채색되어 각국인은 조선의 존재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조선'이라는 개념을 이러한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 넣는 것은 장래 우리들의 독립운동에 관하여 결코 헛일이 아님을 굳게 믿는다. (윤봉길 의사의 일제 신문조서 중)

7부.   일본에서 진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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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일본에서 진 별


일제는 상하이에서 일본군법회의를 열고 윤봉길의사에게 서둘러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일본으로 옮겨가 12월 19일, 가나자와金澤라는 곳에서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이로써 한국인의 자주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알린 윤봉길 의사는 25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독립을 앞당기고 인류의 평화와 정의를 실현하려는 거룩한 순국이었습니다.

윤봉길 의사가 고향을 떠나며 남긴 유묵

ㅇ 윤봉길 의사가 순국 직전 머물렀던 가나자와 육군 형무소


윤봉길 의사가 고향을 떠나며 남긴 유묵

ㅇ 순국 직전 윤봉길 의사의 모습


윤봉길 의사의 도장

ㅇ 윤봉길 의사의 유품(도장)


윤봉길 의사의 지갑

ㅇ 윤봉길 의사의 유품(지갑)


※ 윤봉길 의사에게 물어볼까요 - 두 아들에게 남겨 줄 말씀이 있나요?

윤봉길 의사에게 물어볼까요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유촉시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8부.   상하이의 불씨, 조국광복으로 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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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 상하이의 불씨, 조국광복으로 피어나다


윤봉길 의사의 희생으로 국내외 동포들이 독립의지를 다지고 중국과 함께 항일독립운동을 펼친 끝에 1945년 8월, 마침내 빼앗긴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 가나자와에 묻힌 시신을 찾아내 고국으로 모셔와 국민장을 치렀습니다. 이로써 윤봉길 의사는 그토록 그리던 광복된 조국에서 편안히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광복을 기뻐하는 시민들

ㅇ 광복을 기뻐하는 시민들


고국으로 돌아오는 윤봉길 의사의 유해

고국으로 돌아오는 윤봉길 의사의 유해

ㅇ 고국으로 돌아오는 윤봉길 의사의 유해


국민장으로 치러진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삼의사의 장례식

ㅇ 국민장으로 치러진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삼의사의 장례식 (1946. 7. 7)


※ 더 알고 싶어요 -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어디에 있었나요?

더 알고 싶어요

일제는 가나자와 교외 공병작업장에서 사형을 집행하고 그 시신을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묘지관리소 아래 길 한가운데 몰래 묻어두었습니다. 광복 후 해외에서 숨진 독립운동가들을 모셔오기 위해 ‘임시정부유해발굴단’이 구성되었고,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200여 명이 사흘간 조사한 끝에 어느 일본인의 도움으로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벤트.   윤봉길 의사에게 보내는 편지 (댓글달기 이벤트)

윤봉길 의사에게 보내는 편지


윤봉길 의사의 용감한 의거는 절망에 처해있던 국민들을 일깨웠고, 중국과 힘을 합쳐 일제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소식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응원을 받음으로써 독립운동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비록 윤의사는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일본 땅에서 숨졌지만 그 의거는 조국광복의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윤봉길 의사가 의거 과정에서 남긴 편지에는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들어있답니다.

우리도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윤봉길 의사께 편지를 써볼까요?

※ 이벤트에 참여하신 분 중 추첨을 통해 소정의 기념품을 보내드립니다.

윤봉길 의사께 보내는 댓글달기 이벤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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