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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얼 한국의 빛, 독립기념관

역사와 문화, 자연이 하나되어 배우고 즐길 수 있는곳!
여기는 독립기념관 입니다.

학술

관람시간 - 매일 09:30~18:00(동절기 17:00) 월요일휴관(월요일이 공휴일 경우 정상 운영)

이달의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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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독립운동가는?

유관순 선생 유관순 선생

유관순(柳寬順, 1902. 12. 16. ~ 1920. 9. 28. 충남 천안)은 1902년 충남 천안에서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개신교로 개종한 일가친척과 계몽운동에 힘쓰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신앙심과 민족의식을 중시하였고, 1915년 4월 선교사의 주선으로 서울 이화학당 보통과에 편입하게 되었다.
1918년 국제 정세가 재편되는 상황 속에서 국내외 항일운동 세력들은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준비해갔다. 서울의 학생들도 각 학교별 대표를 선임하여 만세운동 계획을 추진하였는데, 유관순도 학당 내 비밀결사조직 이문회를 통해 상황을 접하고 이화학당 학생 시위대를 조직하기에 이른다.
1919년 3월 1일 유관순과 학생 시위대는 만세 운동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점차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자 만세 운동의 규모는 커져갔고, 이에 조선총독부는 학생들의 참여를 막기 위해 임시휴교령을 내렸다.
1919년 3월 15일 임시휴교령으로 학교가 문을 닫자, 유관순은 고향에서의 만세 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독립선언서를 들고 천안으로 향했다. 우선은 동네 어른들께 서울의 3·1운동 소식을 알렸고, 부친의 도움으로 지역 유지들과 대규모 만세 운동을 논의할 수 있었다.
4월 1일 유관순은 밤새 만든 태극기를 나눠주며 만세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함께 만세 운동을 준비한 조인원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3천 여 명의 군중이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가 확산되자 일제는 시위 운동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안타깝게도 유관순의 부친 유중권을 비롯한 19명이 목숨을 잃고 유관순과 시위 주동자들은 천안헌병대로 압송되었다
이후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된 유관순은 갖은 고문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옥중 만세를 불렀으나, 고문 후유증과 영양실조로 1920년 9월 28일 19살의 나이로 순국하고 말았다. 정부는 유관순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이에 독립기념관(관장 이준식)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유관순을 2019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한다.

- 기 간 : 2019. 1. 1. ~ 1. 31. (한 달간)
- 장 소 :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
- 내 용 : 유관순 영정 등 7점

국가보훈처 이달의 독립운동가 이벤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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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독립운동가전시회 내용보기

유관순 선생 전시회내용1
육탄혈전으로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라 백민 황상규〔白民 黃尙奎, 1890 ~ 1931. 9. 2〕 주요공적 -대한독립의군부·조선독립군정사 회계과장 -의열단 결성, 제1차 ‘의열단 의거’ 참여 -신간회 밀양지회장, 중앙집행위원회 서기장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유관순 선생 전시회내용2
국내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고 중국으로 망명하다. 선생은 1890년 경상남도 밀양군 노하골에서 황문옥(黃文玉)과 허경순(許敬順)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선생의 유년시절에 관해 알려진 점은 많지 않고 1908년 7월 밀양의 노동야학에서 체조교사로 추대된 사실이 확인된다. 경술국치 후 선생은 1913년 일합사(一合社)를 결성하고 광복단(光復團)과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등 국내 비밀결사단체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자금 확보 등에 앞장섰다. 일제경찰의 탄압으로 조직이 와해되자 선생은 보다 장기적인 항일투쟁을 위해 1918년 중국 지린(吉林)으로 망명하였다. 그곳에서 조소앙ㆍ김좌진 등과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와 조선독립군정사(朝鮮獨立軍政司)를 결성하고 회계과장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2월에는 독립운동가 39명 중 하나로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하며 독립의지를 대내외에 널리 알렸다.
유관순 선생 전시회내용3
황상규 집터 (현재 경상남도 밀양군 내이동 957번지) 선생이 살았던 집으로, 현재 멸실되어 음식점으로 사용되고 있다. 〈노동야학 명예교수〉『황성신문』1909년 10월 29일자 1908년 7월 밀양 성내에 개설된 노동야학이 경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관청에서 명예교사를 추대하였는데 그중 선생이 체조과목을 맡았다는 내용이다. 〈대한독립선언서〉 (1919. 2) 선생이 만주와 노령 일대의 독립운동가 38명과 함께 서명한 독립선언서이다. 한국이 자주독립국임을 선언하고 육탄혈전으로 독립 완성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유관순 선생 전시회내용4
의열투쟁으로 일제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신간회 활동을 이끌다 효과적인 대일항쟁을 위해 선생은 신흥무관학교 졸업자와 밀양 출신 청년들을 중심으로 1919년 11월 중국 지린에서 의열단(義烈團) 결성을 주도하였다. 의열단이 국내의 일제식민통치기관 총공격을 계획하자 선생은 1919년 12월 중순 경 먼저 국내로 들어와 거사를 준비하였다. 그러나 거사계획이 사전에 발각되면서 선생은 1920년 6월 일경에 붙잡혀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1926년 4월 옥고를 마친 선생은 청년운동 등 밀양지역 사회운동을 주도하였고, 1927년 2월 좌우합작단체인 신간회(新幹會)가 결성되자 같은 해 12월 신간회 밀양지회 설립을 이끌고 지회장을 역임하였다. 1929년에는 신간회 중앙본부 서기장 겸 서무부장으로도 활동하였다. 국내외를 무대로 다양한 방략의 독립운동을 전개한 선생은 지병으로 1931년 9월 2일 자택에서 서거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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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독립운동가" 삼행시 짓기 이벤트

< 이달의 독립운동가 >를 주제로 삼행시 짓기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2019년 1월의 독립운동가는 유관순 선생님입니다.
매월 말까지 삼행시를 지어주신 분 중 3분께는 독립기념관에서 마련한 상품을 보내드립니다.
즐거운 이벤트와 함께 애국 선열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 이벤트 경품은 회원정보에 기재된 휴대전화 번호를 기준으로 발송되므로, 이벤트 참여 전 회원정보 확인 바랍니다.
< 2018년 12월 이벤트 당첨자 명단 >
박*욱(cl******), 이*열(id*****), 이*민(ls********)

모두 축하드립니다!

이달의 독립운동가 삼행시 목록
순번 이달의 독립운동가 삼행시 작성자 등록일
8 유 유혹을 뿌리치고 정의로운 일을 하며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관 관망하기는 쉽지만 적극적으로 목숨을 걸고 의로운 일을 실행하기는 어렵다.
순 순국으로 정의를 몸소 실천한 위대한 독립투사 유관순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3.1운동 100주년에 민주와 평화통일의 대한민국을 이룩해나가자.
강*원 2019-01-14
7 유관순 열사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딸이다. 그녀의 나라 사랑의
관념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희생이다.
순고의 그녀의 희생정신을 잊지 말고 대대손손 대한독립의 참의미를 알리자!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부끄럽지 않게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지킨 우리의 독립의 참 의미를 되새기며...부끄럽지 않는 우리가 되자. 대한민국만세!!!! 독도는 우리땅!!!
민* 2019-01-12
6 유:유구한 역사와 민족의 정기를 바탕으로
관:심과 나라사랑으로 뭉치신 선열들이여
순:순국하신 얼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오*영 2019-01-08
5 유명하신 분들이지만 진정 마음을 다해 고마움을 표현해보지 못했습니다.
관심도 삼일절 한번 뿐이었습니다.죄송합니다.
순국선열에 대한 관심과 고마움을 삼일운동 100주년인 올해에는 마음껏 표현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민 2019-01-06
4 유 유리같이 맑은 유관순!
관 관심없었던 우리들 마음에
순 순박하게 내려 앉았습니다
이*수 2019-01-05
3 유: 유관순 열사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낸 독립!! 우리의 옳바른 역사 의식과
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순: 순탄하지 않은 그의 삶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기억하자!
김*별 2019-01-02
2 유:구한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우리는 여러번의 위기마다 자기 자신을 불태운 그분들이 있었기에 나아갈수 있었다...살기 바쁜세상 이지만 관:심을 가지고 그리고 다음세대에도 알려야 한다...!!순:간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과 교육으로..!! 박*진 2019-01-02
1 유럽등 많은 나라 사람들이 서대문형무소를 찾아 주고 계십니다.
관광목적이 아니라 100년전 일제의 만행에
순수하기만했던 우리국민들이 어떻게 무참히 짖밟혔는지 알게 되었을 겁니다. 역사와 증거는 차고 넘칩니다.
정*미 2019-01-01

이벤트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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