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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얼 한국의 빛, 독립기념관

역사와 문화, 자연이 하나되어 배우고 즐길 수 있는곳!
여기는 독립기념관 입니다.

학술

관람시간 - 매일 09:30~18:00(동절기 17:00) 월요일휴관(월요일이 공휴일 경우 정상 운영)

국내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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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기 집
게시글 [학생운동] 혜화동 광주학생운동 제1차 서울학생항일시위지
운동분류 3·1운동
주소 전라북도 익산시 오산면 오산리 322

1919년 4월 4일 익산지역 만세시위를 주동하고 시위 장소에서 순국한 문용기가 살던 곳이다.
문용기(文鏞祺, 1878∼1919)는 박도현·장경춘 등 기독교 계통의 인사들과 몰래 만나 사전계획을 수립하고 3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익산장날을 기해 시가를 행진하였다. 시위 군중이 1,000여 명으로 늘어나자 일제 경찰은 소방대원과 일본인 농장 직원들까지 동원하여 시위 군중에게 무차별 발포를 하고 곤봉과 갈고리로 닥치는 대로 폭행을 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문용기는 총검으로 가슴을 찔려 유혈이 낭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순국하였다. 현재 독립기념관에 그의 피 묻은 옷이 소장되어 있다.

사진

문용기 집 정면 문용기 집 정면 문용기 집 후면 우측 문용기 집 후면 우측 문용기 집 후면 좌측 문용기 집 후면 좌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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