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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얼 한국의 빛, 독립기념관

역사와 문화, 자연이 하나되어 배우고 즐길 수 있는곳!
여기는 독립기념관 입니다.

전시

관람시간 - 매일 09:30~18:00(동절기 17:00) 월요일휴관(월요일이 공휴일 경우 정상 운영)

시어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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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 `문일평(文一平 : 1888 ~ 1939)`에 대한 내용 입니다
문일평(文一平 : 1888 ~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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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평(文一平 : 1888 ~ 1939)

호는 호암(湖岩). 평안북도 의주군 출신으로 1905년까지 의주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의주에서 서양문화와 러일전쟁을 목격하고 신학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일본으로 유학하였다.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학부에서 공부하면서 재일유학생단체인 태극학회의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기관지인 『태극학회(太極學會)』에도 많은 글들을 기고하였다. 1910년 귀국하여 대성학교ㆍ경신학교 등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비밀결사인 신민회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12년 상해로 건너가 독립운동 단체인 동제사(同濟社)와 박달학원(博達學院)에서 교사로 활동하면서 박은식(朴殷植)ㆍ신채호(申采浩)와 교유하였다. 1914년 귀국 후 고향에 은거하였고 1919년 3ㆍ1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피체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중동학교ㆍ송도고보 등 여러 학교에서 역사교사로 재직하면서 신간회(新幹會) 중앙위원ㆍ조선물산장려회 이사 등으로 민족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33년 4월부터 조선일보 편집고문으로 재직하며 여러 편의 사론과 수필 등 한국사 관련 글을 발표하였고, 특히 ‘조선심(朝鮮心)’과 ‘조선정신’을 강조하여 민족주의 역사학의 확립에 기여하였다. 1934년 5월 진단학회(震檀學會)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활동하던 중 1939년 4월 52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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