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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내용

독립기념관 제6관 ‘새나라세우기’가 다시 태어났습니다. 관람객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세련된 전시 공간의 활용, 한층 보강된 새로운 영상과 음성,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재현한 모형과 애니메이션, 관람객에게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노력을 생생히 전달합니다. 모두 5개의 존으로 이루어진 6관은 민족저항의 노래를 시작으로 민족 문화를 수호하고 민중의 힘으로 이루어진 항일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으로 조국 광복의 환희를 맞기까지의 과정과 역사를 생생히 재현해 놓고 있습니다. 먼저 입구를 들어서면 조용히 타오르는 불길이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그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한용운, 윤동주, 이육사, 이상화 등의 저항의 시가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줍니다. 하루를 살아도 자유와 평화가 숨쉬는 우리의 강산과 조국에서 살고 싶은 염원이 살아 숨쉬는 장소입니다. 1존의 시들이 울리는 감동. 우리말과 우리글과 우리 역사, 이는 한 나라를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일제 식민지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한국인을 일본인으로 완전히 동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글 말살은 가장 심여를 기울인 식민 동화 정책이었습니다. 여기에 맞서 조선어학회는 조선어 큰사전을 편찬하고자 합니다. 1942년 10월 일제는 회원을 체포하고 조선어학회를 해산시켜 버립니다. 그러나 해외독립운동의 산실인 만주에서, 그리고 수많은 비정규 교육기관에서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우리의 역사를 가르쳐 민족 의식을 배양하기 위한 민족 교육운동은 끝없이 계속되었습니다. 동학 농민군의 핵심인 전봉준을 상징하고 우리민족의 생활상과 사회상을 담은 전래동요 파랑새는 살아 있는 민족의 끈기를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1926년 6월 12일 융희 황제 순종이 승하하자 민중은 다시 한번 독립의 소리를 높게 외쳤습니다. 3.1운동 이래 주권회복을 바라던 우리의 민족 정신은 60만세운동을 계기로 1927년 신간회운동, 1929년 광주학생운동으로 활활 타오릅니다. 1929년 10월 31일 전라남도 나주. 한 일본인 학생이 한인 여학생을 희롱하면서 발생한 한일 학생간의 충돌은 한일 학생간의 충돌을 넘어 전국적 독립만세 운동을 발전하게 됩니다. 피를 뿜고 쓰러졌을때 그날 그들이 높이 들었던 조선 독립을 향한 정의의 횃불은 역사위에 길이길이 타오릅니다. 그들의 넋과 뜻은 겨레의 갈 길을 밝히어 비추오리다. 그리고 1928년 9월 원산의 노동자와 시민들이 일본 자본가의 탄압에 맞서 대규모로 파업을 일으킵니다. 이는 전체 노동자의 사회의식의 성장과 민족해방운동의 역량이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민족운동이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당시 문화와 체육계 활동은 우리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1919년 중국 상하이 각지에 흩어진 임시 정부들이 통일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탄생합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3.1운동의 결정체이자 우리민족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입니다. 민족의 대표 기구인 동시에 독립운동 최고 중추 기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은 이후 일제의 수색과 탄압으로 고난의 행군을 시작합니다. 항저우, 전장, 광저우, 류저우, 치장 등 중국 각지를 전전한 임시정부의 행군은 고난의 역사를 증명합니다. 김구선생이 피신생활을 하던 비상 피난 가옥과 피난 선박을 체험하고 얼마나 조선 광복을 온몸으로 극복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임시정부는 충칭 임시정부에서 마침내 꿈에서나 기다리던 광복의 기쁨을 맞이하게 됩니다. 내일을 열기위해 말과 글과 역사를 지켰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민중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다가올 조국을 위해 임시정부의 요인들은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밝은 내일이 기다리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마침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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