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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리말 - 망명 인사의 역사저술과 고구려ㆍ발해인식
  - 고구려ㆍ발해인식의 특징 - 맺음말
 
대종교는 중광 당시에 「단군교포명서 」(檀君敎佈明書)를 통하여 단군이 천명을 받고 강림하여 ‘무극(無極)한 조화로 지도(至道)를 탄부(誕敷)하고 대괴(大塊)를 통치 하였다’고 하며, ‘성자신손이 계계승승(繼繼繩繩)하여 인족(人族)이 익번(益蕃)하며 치화(治化)가 유흡(愈洽)’ 하여 단군대황조의 치화가 동북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고 밝혔다. 또한 대종교 경전인 『신사기』(神事記)의 「치화기」(治化紀)에서 ‘구족분포도’를 제시하였다. 이는 민족사의 영토와 종족 개념을 설정한 것으로서, 이후 대종교도 역사서술의 지침이 되고 여타 사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신교사관(神敎史觀)으로서 대종교의 사관을 가장 잘 정리한 인물은 김교헌이었다. 김교헌 사학의 특징은 단군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무리하게 훼조하지 않고 단군민족주의 세계관을 투영시켜 새로운 상고사 체계를 수립하였고, 배달족이라는 단일민족을 설정하여 민족사를 통사로 구성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김교헌이 저술한 『신단실기』는 「단군세기」(檀君世紀) 등 19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서는 단군의 사실(史實)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으나, 「단군세기」와 「족통원류」(族統源流)는 그의 민족사 인식체계를 잘 알려준다. 그는 「단군세기」에서 단군족(배달족)으로 단국·부여·고구려·백제·신라·발해·예맥·동옥저·비류·숙신·삼한·정안국·요·금 등 14개 왕조를 설명하였다. 즉, 민족사를 단군족(배달족) 역사로 단일화하고, 요, 금의 북방족까지 국사에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만주에서 영위된 국가들을 민족사의 주류로 부각시키고 단군민족주의적 국사상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같은 그의 인식은 단재의 부여 계승의식과, 한말 교과서의 한(韓) 계승의식을 종합한 대단군주의로 이해되기도 한다. 특히 그는 숙신을 상고시대 동방 구이 가운데 최강국이라 하며, 홀신·직신·읍루·물길·말갈은 모두 동종이며 숙신의 땅은 모두 발해의 소유가 되었다고 하였다. 발해가 북방 최강국의 영토를 점유한 것으로 설명한 것이다.

본서의 「족통원류」는 단군 후예인 배달족의 범주와 분파과정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그는 우리 민족사의 범주를 조선족·북부여족·예맥족·옥저족·숙신족 등 다섯 갈래로 나누고, 이들이 현재의 조선족과 만주족으로 분파하는 과정을 설명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북부여족이 분파하여 만주족으로 형성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북부여족은 분오지(分五支)하니 일은 전(傳)동부여족하고 일은 전고구려족하고 일은 전백제족하고 일은 여규봉족(與圭封族)으로 합하고 일은 위선비족(爲鮮卑族)이라. 동부여는 입우고구려족(入于高句麗族)이라. 고구려는 우이분(又二分)하여 일은 여(與) 신라로 합하고 일은 전발해족하고 발해는 전여진족하고 여진은 전금족(傳金族)하고 금은 전후금족하니 즉금(卽今)만주족이라.”
이에 의하면 그는 여러 분파가 이합집산을 거듭하여 신라족이 고려족을 거쳐 현재의 조선족이 된 것으로, 그리고 발해족이 여진족과 금족을 거쳐 현재의 만주족이 된 것으로 도식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그는 남방족을 조선족으로 북방족을 만주족으로 설명하되, 이를 모두 배달족으로 해석하여 만주와 한반도 전체를 민족사의 무대로 외연 하였던 것이다.

그는 발해를 민족사의 정통 왕조로서 비중 있게 다루었다. 그는 대조영의 선대를 ‘고구려 속말말갈인’ 이라고 병칭 서술하고, 대조영이 고구려와 말갈 병사를 이끌고 발해를 건국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발해 강역의 강대함을 들어 해동승국(海東勝國)이라고 표현하였다. 또한 발해가 비록 멸망하였으나, 대광현(大光顯)이 수만 호를 이끌고 고려로 합류함으로써 민족사의 주류에서 이탈하지 않았음을 강조하였다.

한편 그가 저술한 『신단민사』는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한 통사의 효시로 평가된다. 그는 본서를 ‘국대(國代)를 한(限)치 않고 민족을 표준하여 단군 민족의 전체를 통거(統擧)’하여 서술한다고 밝혔고, 서명을 『신단민사』라 한 것도 그런 연유라고 설명하였다. 즉, 국가의 변천이 아니라 민족의 소장(消長)을 역사서술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으로서, 국가사가 아니라 민족사의 관점에서 서술하였음을 밝힌 것이다.

본서 권두의 표로 제시된 「민족계」(民族系)·「남북강통일국계」(南北疆統一國系)·「대사계」(大事系)는 그의 역사인식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민족계」는 『신단실기』의 「족통원류」와 같이 배달족의 범주와 분파과정을 도표화한 것이다. 그런데 『신단실기』와는 달리 배달족을 조선족·부여족·한족·예족·맥족·옥저족·숙신족 등 일곱 갈래로 설명하고 있으나, 대체적으로 결론은 같다. 「남북강통일국계」는 단군시대만 통일국으로 인식하고, 나머지는 북강국과 남강국으로 분류하였다. 즉, 민족사를 남북강국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북강국의 주류는 고구려와 발해로 인식하되, 요·금·청까지 포함하였음은 전술한 『신단실기』와 같다. 「대사계」는 민족기원, 건국기년, 사실의 순으로 주요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였는데, 고구려는 물론 발해의 건국과 영토 확장, 멸망 등 주요 사실을 기록함으로써 민족사의 주류로 자리매김 하였다.

『신단민사』는 범례에서 상고·중고·근고·근세로 시기구분 한다고 밝혔다. 그가 설정 한 편명 또한 남북강국 개념에 따라 명명되었다. 그런데 그의 남북조시대 개념은 여타의 사가들과는 다르다. 즉, 통일신라와 발해만이 아니라 거란까지 ‘남북의 삼조’를 남북조시대라고 하였던 것이다. 요·금·청까지 민족사로 포함하였던 그로서는 당연한 시기구분의 범주 설정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특별히 발해의 민족사적 의의를 굳이 강변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대조영이 속말부인으로서 부(父)인 걸걸중상(乞乞仲象)과 함께 후에 고구려의 장수가 되었다는 것도 애써 논변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 단군족(배달족)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경술국치만이 통탄스런 일이 아니라, 청조의 멸망도 ‘배달민족의 국명군호(國名君號)가 남북강(南北疆)에 개절(皆絶)한 단군 이후 초유의 대변’으로 받아들였던 것도 이런 인식의 발로였다. 그가 정립한 남북강통일국론(南北疆統一國論)과 고구려, 발해 인식은 대종교적 역사인식의 중심축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