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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리말 - 망명 인사의 역사저술과 고구려ㆍ발해인식
  - 고구려ㆍ발해인식의 특징 - 맺음말
 
일제 강점기에 중국 동북지방은 한민족에게 양면적 측면에서 중시된 지역이있다. 하나는 일제 식민사관에 의해 왜곡된 민족사를 수호하기 위해 이곳을 역사발전의 무대로 하였던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민족사의 정통으로 복원하고자 한 학술사적 측면이다. 또 하나는 이 지역으로 이주 또는 망명한 한민족의 생활과 중국과의 관계 등 동포사회 문제와, 이들을 거점으로 전개된 독립운동과 관련된 생활사·운동사의 현실적 측면이다.
 
이 시기 중국 동북지방은 일제에 의해서도 중시되었다. 그것은 곧 일제의 한국 강점 이전부터 대륙침략이라는 영토 팽창욕에 정치적으로 종속된 침략사관에 의한 결과였다. 명치 말기부터 일본의 동양사학자들은 이른바 만선사관(滿鮮史觀)을 형성하였고, 만선불가분론(滿鮮不可分論)에 의해 한국사의 자주성을 부정하고 만선일가론(滿鮮一家論)을 주장하였다. 이는 한민족의 존재를 무시한 것으로서, 역사를 사고하는 의식이 결여된 성립될 수 없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에 따라 고구려의 역사는 축소되거나 왜곡되고, 발해사는 한국사의 본류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일제의 침략전쟁이 대륙으로 확대되며 만선일가론을 일만일가론(日滿一家論)으로 확대되었다.

민족주의 사가들이 정립한 만주인식-만한일국(滿韓一國)·만한동족(滿韓同族)·만한일가(滿韓一家)·대동민족(大東民族)·남북강국론(南北疆國論) 등-과 일제의 식민사관 체계인 만선사관은 외형상 구조적 유사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양자는 민족의 독립과 보전을 명제로 민족사의 정통과 계통을 수호하고자 한 인식과, 식민지 지배를 위해 피지배 민족사를 정치적으로 종속시키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이었다. 따라서 입론의 근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곧 일제 강점기 중국 동북지방은 상반되는 역사인식의 작용·반작용의 대상지였고, 그 구체적 양상은 고구려사와 발해사에 대한 극명한 역사해석의 차이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같은 인식주체간 인식론의 충돌은 식민지 시기 한·일간의 문제로 종결된 것이 아니라, 근래 한·중간의 문제로 재현된 현재성을 지닌다. 곧 중국 정부가 이른바 ‘동북공정’ (東北工程) 프로젝트에서 ‘일사양용’ (一史兩用)의 논리로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고자 의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고는 이같은 만주와 고구려·발해 인식 대립의 현재성에 유의하며, 일제 강점기 망명인사들의 인식론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망명 인사 가운데에는 독립운동의 실천적 과제로서 민족사의 연구를 병행한 경우가 많았다 박은식(朴殷植)·신채호(申采浩)·이상룡(李相龍)·김교헌(金敎獻)·김정규(金鼎奎)·유인식(柳寅植)·이원태(李源台)·계봉우(桂奉瑀)는 그 대표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본고는 이들의 저술에 나타난 고구려·발해 인식을 개별적으로 분석하여 그 특징을 검출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만, 일제 강점기 민족주의사학의 고구려·발해인식을 구조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활동하던 사가들의 저술까지 병행 분석하여야 할 것으로 믿는다. 양자간에는 처해 있던 정치적·사회적 현실과 일제의 식민지지배에 대한 체감도 등에 따라 역사인식의 차이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본고는 우선 망명 인사들의 경우를 검토의 대상으로 하고, 국내 사가들의 인식론 분석은 후일을 기약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