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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와 고구려 발해 인식 심포지움
- 일 시 : 2004. 8. 13 (금)
- 주 최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 장 소 :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
- 주제발표
    ㅇ 제1주제 : 윤휘탁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
    ㅇ 제2주제 : 박인호 금오공대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ㅇ 제3주제 : 최혜주 숙명여대 연구교수
    ㅇ 제4주제 : 박걸순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
- 자료제공 : 한국정책방송 KTV

 
박은식은 1911년 4월 서간도 환인현 홍도천으로 망명하여 윤세북(尹世復)의 집에서 1년여 기거하였다. 이 때 그는 대종교 교도가...
 
신채호는 일찍이 만주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이는 「독사신론」(讀史新論)을 통해 학술적으로 정리하기도 하였으나...
 
일제하 만주로 망명한 인사 가운데 이상룡은 만주 인식의 모순상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망국을 당하자 선재(先齋)에 ...
 
대종교는 중광 당시에 「단군교포명서 」(檀君敎佈明書)를 통하여 단군이 천명을 받고 강림하여 ‘무극(無極)한 조화로 지도(至道)를...
 
김정규는 척사유림으로서 1908년 관북의진의 참모장으로 구국운동에 참여하였고, 이듬해에 망명하여 유인석이 주도한...
 
유인식은 혁신 유림으로서 을미의병 참여를 시발로 구국운동에 참여하였고, 이후 사상을 전회하여 계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다...
 
이원태는 안동의 혁신유림으로 1910년대 중반 대종교에 가입하였고, 평생을 대종교도로 일관한 인물이다. 그는 1916년 만주로...
 
계봉우는 1920년대 전반기에 3·1운동 전후의 민족주의사학을 상징하는 저술을 하였고, 이후 유물사관에 의해 민족사를 체계화한 ...
 
대부분의 망명인사들은 망국의 현실론에 입각하여 고구려·발해의 구강인 만주에 대한 인식론을 전개하였다. 따라서 그들의 만주인식론은 망국, 망명, 이주, 정착에 따른 정치성을 지니고 있다. 그들에게 만주는 역사의 땅으로서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나...
망명인사들의 고구려·발해인식은 분명히 반식민사학적 성격을 지닌다. 일제 관학자들은 특히 발해에 관한 역사적 진실에 대한 이해와는 별개로 이를 역사서술로 처리하는 데에 상당한 고민을 하였다. 이마니시 류(今西龍)은 발해의 멸망 후 고려로...
망명인사들의 고구려-발해 정통론은 곧 만주에 대한 수복론과 다물주의적 인식으로 귀결되었다. 가장 강렬한 수복론의 관점에서 만주를 응시한 것은 신채호였다. 그는 한민족이 한 걸음씩 전진하여 결국은 고구려 구강을 색환하고, 단군유사를 중광할 때가 ...
일제 강점기 망명인사의 대부분은 종족과 강역의 비정을 민족사 서술을 시발로 삼았고, 큰 비중을 두고 논의하였다. 박은식의 대동민족·만한일국·만한동족론, 신채호의 단군 구강과 부여민족론, 이상룡의 중한일체론, 김교헌과 이원태의 단군족(배달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