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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얼 한국의 빛, 독립기념관

역사와 문화, 자연이 하나되어 배우고 즐길 수 있는곳!
여기는 독립기념관 입니다.

학술

관람시간 - 매일 09:30~18:00(동절기 17:00) 월요일휴관(월요일이 공휴일 경우 정상 운영)

국내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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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학림 터
게시글 [학생운동] 혜화동 광주학생운동 제1차 서울학생항일시위지
운동분류 3·1운동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1가 2

1915년 11월 개교한 불교계의 고등교육기관으로 3·1운동을 비롯한 불교계 민족운동의 산실이다.
중앙학림(中央學林)이 불교계 민족운동의 거점으로 떠오른 것은 3·1운동 전야인 1919년 2월 28일 밤 한용운이 계동 43번지 유심사(唯心寺) 자신의 처소로 신상완·백성욱·김대용·오택언·김법린·김규현 등 중앙학림 학생들을 불러 독립선언서 3천매를 전달하고 시내를 비롯한 각처에 배포할 것을 지시하면서부터였다. 한용운의 지시를 받은 학생들은 인사동 범어사 포교당으로 자리를 옮겨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협의하고, 중앙학림 기숙사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분배하였다. 그리고 3월 1일 당일 서울시내 각 처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한편, 범어사·해인사·통도사·동화사 등으로 내려가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특히 신상완·백성욱·김대용·김법린 등 4명은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였는데, 이들 가운데 신상완과 백성욱은 국내특파원으로 5월 중순 다시 귀국하여 불교계를 거점으로 지하신문 『혁신공보』를 발행하고 자금을 모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뿐만 아니라 중앙학림 학생들은 1920년 창립된 조선불교청년회와 불교유신회에 참여하여 불교개혁운동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중앙학림 자리에는 그 뒤 1928년 4월 불교전수학교가 2층 양옥 벽돌교사를 신축하고 문을 열었다. 불교전수학교는 1930년 4월 중앙불교전문학교로 승격, 1940년 6월 혜화전문학교로 개칭, 1946년 9월 동국대학교가 되었는데, 이 자리는 1947년 9월 동국대학교가 중구 필동3가 26번지로 이전할 때까지 교사로 사용되었다.

사진

중앙학림 터 중앙학림 터 중앙학림 중앙학림 표지석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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