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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얼 한국의 빛, 독립기념관

역사와 문화, 자연이 하나되어 배우고 즐길 수 있는곳!
여기는 독립기념관 입니다.

학술

관람시간 - 매일 09:30~18:00(동절기 17:00) 월요일휴관(월요일이 공휴일 경우 정상 운영)

국내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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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케 관사 터
게시글 [학생운동] 혜화동 광주학생운동 제1차 서울학생항일시위지
운동분류 사회운동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 25

정태식을 중심으로 한 경성제국대학 독서회의 거점이자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의 대표적 인물인 이재유의 은신처였던 곳이다.
미야케 시카노스케[三宅鹿之助]는 1924년 3월 도쿄[東京]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1927년 4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교수로 부임하여 1934년 5월 일제 경찰에 검거될 때까지 법문학부 학생들과 적색독서회 등을 조직하여 반제국주의 투쟁을 전개한 인물이다. 그는 1929년 2월부터 해외연구의 명을 받아 독일 등지에서 2년간 유학하면서 독일공산당에 입당하였고, 1931년 4월 다시 경성으로 돌아와서는 자신의 제자인 정태식(鄭泰植)·최용달(崔容達)·박문규(朴文圭)·이강국(李康國) 등을 통해 조선 안의 정세자료를 수집해 국제공산당에 보고하였다. 그리고 1933년 말부터 경성제국대학 조수 정태식을 통해 당시 조선공산당재건운동을 이끌던 이재유(李載裕)·권영태(權榮台) 등과 접촉해 자신의 관사(경성부 동숭동 25번지 대학관사 19호)를 거점으로 공산주의운동의 근본방침을 수립하는 작업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서대문경찰서에 검거된 이재유가 1934년 4월 14일 경찰서를 탈출하자 미야케는 5월 21일 자신이 검거될 때까지 37일간 자신의 관사에 숨겨주었다. 5월 17일 정태식이 일제 경찰에 검거되어 미야케가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관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 또한 검거되는 처지가 되었으나, 하루 넘게 이재유의 신변에 대해 입을 열지 않음으로써 이재유는 다른 곳으로 무사히 피신할 수 있었다. 당시 경성제국대학에서 미야케의 이론적 지도를 받은 정태식·최용달·박문규·이강국 등은 해방 후 조선공산당의 핵심 인물로 활약하였다.

사진

미야케 관사 터 -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거점 미야케 관사 터 -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거점 미야케 관사(『동아일보』, 1935년 8월 24일) 미야케 관사(『동아일보』, 1935년 8월 24일) 미야케 시카노스케 미야케 시카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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